어떤 정당함
인간에게 부정적인 감정이 있다면 창조주에게 유래한 것입니다. 모든 부정적인 감정이 부당하거나 악한 것은 아닙니다. 부정적인 생각이나 행동 역시 그러합니다.
질투, 역겨움, 증오, 분노, 염려, 슬픔, 두려움 같은 것들도 그러하죠.
질투의 어원적 의미는 ‘전적 헌신을 요구하는’이라고 합니다.
성과 관련된 모든 것은 전적으로 배우자에게 향해 있어야죠. 다른 이성에게 향할 때 질투나 분노를 느끼는 것은 정당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숭배의 성격이 있는 모든 것은 창조주에게 나타내야죠. 예수나 마리아에게 조금이라도 나눠서 가는 것도 용납이 안 됩니다. 예수나 마리아는 숭배의 대상이 전혀 아닙니다. 모든 기독교는 창조주의 분노의 대상의 일 순위입니다.
예수 자신도 고려의 여지없이 못 박고 있죠.
너의 하느님 여호와를 숭배해야 하고, 그분에게만 신성한 봉사를 드려야 한다.(마태 4:10)
국가나 이념, 돈, 연예인, 인간 통치자 등등에게 그런 성격의 것이 조금도 돌아가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죠.
다른 쪽으로 성적 관심을 갖게 하는 모든 것에 대해 역겨움, 구토증을 느끼는 것이 합당하죠. 음란물 같은 것에요.
동료인간에 대한 사랑이 아닌 모든 언행에 대해서도요. 소위 링이라는 것 위에서 행해지는 모든 폭행에 대해서 그러하고 범죄와 폭력, 살인을 다루는 모든 영상물이나 오락물들도 그러하죠. 그렇지 않은 것이라도 응원이 수반되는 모든 경쟁성이벤트에 대해서도 그러합니다. “이겨라, 이겨라.”는 참으로 구역질 나는 것입니다.
투표를 포함한 모든 정치적인 언행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역겨운 감정을 갖는 것이 당연합니다.
사랑하는 동료인간이 어떤 불의에 연루되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나 그렇게 되었을 때의 슬픔도 정당성이 있습니다.
악에 대한 적대감을 갖는 것도요.
그러한 감정과 조화를 이루는 생각도 정당합니다. 그와 일치한 행동도요. 저주를 선언하는 것도요.
경우에 따라 신의 명령이라면 살육행위도 유일하게 정당합니다. 동족에 대한 살인도요. murder와 kill은 매우 다른 용법으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그가 이제 그들에게 말하였다. “이스라엘의 하느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각 사람은 자기 칼을 옆에 차라. 진영의 문에서 문으로 오고 가면서 각자 자기 형제와 각자 자기 동료와 각자 자기의 절친한 친지를 죽여라.(출 32:27)
곧 예수가 선봉에서 악한 세상에 속한 전 인류를 멸망시키죠.
모든 것이 신념에 입각한 것입니다.
병적인 두려움이 아니라 창조주를 불쾌하시게나 하지 않을까 하는 합당한 두려움은 인간에게 필수입니다.
어떤 부정적인 감정은 반드시 가져야 하며 그와 일치하게 행동으로 옮겨도 정당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