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임의

by 법칙전달자

어떤 임의


인간이 결코 임의적이거나 자유로워서는 안 되는 면이 있습니다. 인간에게 선택권이 전혀 없는 것에 임의적이 되는 것은 죽음 그것도 영원한 멸망이 될 뿐입니다.


영적, 도덕적인 면으로 진위나 선악, 깨끗한 것과 부정한 것을 결정하는 것은 인간이 아닙니다.


그러나 창조주의 선언에 대해 그렇게 규정되어 있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내가 주 예수 안에서 알고 또 확신하는 것은, 무엇이든 그 자체가 더러운 것은 없고 다만 더럽다고 여기는 사람에게만 그것이 더럽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14:14)”라는 원칙이 적용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대상과 그에 대한 평가가 애초에 임의성이 주어진 것들이 있는 것이죠.


대상이 실제적으로 혹은 사실적으로 그러한 것과 인간이 어떠하다고 여기는 것이 차이가 있어도 인간의 주관적인 관념이 인간에게 실제로 영향을 미치는 것이죠.


사람마다 현저한 차이가 나는 경우도 있는데 이 경우는 타인의 관념을 존중해 준다는 것이 원칙입니다. 설득하기가 쉽지 않은 경우가 많은 것이죠.


믿음이 약한 사람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견해가 다르다고 해서 판단하지 마십시오.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지만 약한 사람은 채소만 먹습니다. 먹는 사람은 먹지 않는 사람을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않는 사람은 먹는 사람을 판단하지 마십시오.(로마서 14:1~3)


어떤 사람은 한 날을 다른 날보다 낫다고 판단하고, 또 어떤 사람은 한 날을 다른 모든 날과 같다고 판단합니다. 각자 자기 생각에 대해 온전한 확신을 갖도록 하십시오.(로마서 14:5)


당신이 가진 믿음을 하느님 앞에서 자신만을 위해 간직하십시오. 자기가 옳다고 여기는 일을 하면서 자신을 정죄하지 않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로마서 14:22)


인간이 자의적으로 붙인 의미도 존중받을 수 있는 경우가 있는 것이죠.


하느님의 친절과 준엄함을 생각해 보십시오. 하느님께서는 넘어진 사람들에게는 준엄하시지만 당신에게는 친절하십니다. 당신이 그분의 친절 안에 머무른다면 말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당신도 잘려 나갈 것입니다. (로마서 11:22)


존중받을 수 있는 경우는 친절하게 존중받지만 존중받을 수 있는 경우가 아닌 것을 임의로 그렇게 하는 것은 준엄한 심판의 대상이 됩니다. 생명에서 잘려나가는 것이죠.


물론 사람들은 그런 분별력이 없으며 하느님의 친절 안에 머물러 있지도 않습니다.


하느님의 존재 자체도 자신이 결정하려 하죠.


하느님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있는 것이고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없는 것이라는 생각은 위의 원칙에 적용되지 않습니다.


창조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창조가 맞고 진화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진화가 맞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정치나 종교에 대한 이슈도 그러합니다.


존중받아야 할 그런 자의적 성격의 것이 전혀 아닙니다. 그렇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인생길에서 이미 넘어져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 상태로는 인간다운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절대다수의 사람들처럼요. 네 발로 기어 다니는 짐승 같은 삶을 살다가 죽어 없어질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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