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우라고 있는 것이

by 법칙전달자

외우라고 있는 것이


절대적인 혼자라는 것은 없습니다. 혼자 있을 때 하는 행동이 그 사람의 참된 됨됨이를 나타내준다고 할 수 있는데 “어둠을 사랑한다.”는 표현은 혼자 있을 때 하는 행동의 질이 어떠한가를 말해주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어떤 행동도 인과법칙에 따른 대가를 치르는 것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마치 누군가가 보고 있어 그에 따른 관장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죠.


그런데 창조주가 바로 옆에 항상 있다고 생각하고 대화하는 방식으로 사는 것에는 어떤 허황됨이 있습니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 역시 그렇게 하는 것의 유익은 형언할 수 없이 큰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꼭 일방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사람의 목소리와 같은 응답이 아닌 것일 뿐이죠.


이처럼 기도가 일상적이 되어 있는 사람들은 극히 드뭅니다.


처음에는 각별한 태도로 정중히 해야 하는 의식인 것처럼 생각할 수 있죠. 기도하라는 원칙을 처음으로 접했을 때 어떤 내용으로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하는지 궁금해 할 수 있죠. 그래서 예수는 적어도 두 번, 모범적인 기도에 대해 알려주셨는데 그 두 경우는 약간의 차이가 있어 외우라는 취지는 결코 아닙니다. 하나의 예시인 것이죠.


마태복음의 경우만 살펴보면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해지게 하십시오. 아버지의 왕국이 오게 하십시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십시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십시오. 우리가 우리에게 죄를 지은 사람들을 용서해 준 것같이,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한 자에게서 구출해 주십시오.’(마태복음 6:9~13)


그전에 먼저


“기도할 때에, … 같은 말을 되풀이하지 마십시오.” (마태복음 6:7)라는 원칙을 알려 줌으로써 암송하여 되풀이하는 의식적인 기도문으로 사용하지 말라고 합니다.


교회에서 주기도문으로 기도하는 시간을 갖는 것은 이러한 원칙을 범하는 것이 됩니다. 심지어 묵주를 사용하여 여러 가지 기도문을 염불 하듯이 반복하는 경우도 있죠.


기도문의 취지는 인간이 먼저 자신의 개인의 필요가 아니라 하느님의 뜻에 관련된 내용을 먼저 다루어야 함을 알려 주는 것이죠. 사실 인간 일반의 문제나 인간 개개인의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는 되는 것도 그에 달려 있죠.


개인적인 것으로는 생필품에 관한 것, 용서에 관한 것, 구출에 관한 것이죠.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악한 영향력에 굴복하지 않는 것이 자력으로 쉽지 않은 것을 의미합니다. 만약 세상에서 부를 추구하고 오락을 즐기려고 하면 바로 걸려드는 것이 죄입니다.


부를 추구하지 않으려면 그날의 필수품이 있는 것으로 만족해야죠. 또 죄라는 것은 무의식적으로라도 짓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문책을 면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자신에게 고통과 피해를 준 동료인간의 죄를 용서해 주는 전제하에서 자신의 죄를 용서받을 수 있죠.


이와 같은 개인적인 것에 인간은 민감한 관심을 갖고 있지만 실제적으로 더 진지한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인간과 우주를 창조한 그 목적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 점과 관련하여 창조주는 비난과 조롱을 받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존재 자체가 무시되죠.


그러므로 그 점과 관련하여 창조주와 관련한 자신의 인식을 가장 먼저 나타내는 것은 자연스럽습니다.


그리고 참으로 아름다운 나라인 하느님의 왕국의 지상에서의 실현에 대한 우선적인 관심을 나타내는 것도 그러하고요.


인간의 의식이 어떠해야 함에 관한 지식이 가장 중요한 지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과학이나 정치, 경제, 문화 등등에 관한 지식이나 정보와는 비교가 되지 않죠. 그러나 세상에서는 다루지 않습니다.


주기도문을 묵상하여 그 가장 중요한 지식으로 그것이 바로 자기 자신이라 할 수 있는 ‘의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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