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까운
어떤 가수가 100명의 청중 앞에 100의 가치가 있는 노래를 불렀을 때 처음 듣고 그 100의 행복을 만끽하는 사람이 있을 확률은 0일 것입니다. 10 정도를 느끼는 사람도 거의 없을 것이고요. 기껏해야 한자리 수일 수 있습니다.
이 안타까움을 인상적으로 피력한 평론가들이 있는 것이죠.
숲의 그 절대적인 아름다움은 수치로 표현하면 얼마나 될까요? 그 1/100이라도 느낀다면 폭력적인 게임이나 하고 저급한 영상물이나 보면서 히히덕 대는 일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저는 하루에 많으면 세 번까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숲을 드나드는데 숲의 그 강력한 매력에 비해 사람들이 너무 없음에 안타까움을 느끼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엄청난 행복을 거의 느끼지 못하는 것이죠.
성서 읽기의 행복 같은 것은 더 말할 나위도 없고요.
말해봐야 소용없다는 것도 잘 압니다.
그래도 전혀 그렇지는 않은 경우가 있음을 확인하는 때도 있는데 저의 말을 듣고 자신도 자연을 감상하는 행복을 느껴보기 위해 화분을 수를 늘려서 8개가 되었다는 것인데 그나마도 그의 아내가 그만 늘이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숲을 산책해 보는 적극성까지는 발휘한 것은 아니더라도요.
사람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행복을 조금이라도, 그 본래의 행복의 1/100이라도 느낄 줄 안다면 그의 삶의 질은 두드러지게 향상될 것입니다.
욕을 하는 것이 불가능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사람사이의 격차는 이련 면에서도 너무나 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