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절단
목을 잘라주는 것은 그나마 은혜입니다. 공포의 단두대가 아니라 은혜의 단두대인 것이죠.
허리를 잘라 죽이는 것(요형)도 있는데 단지 목숨만 끊는 것이 목적은 아니죠.
거꾸로 매달아 놓고 가랑이 사이에서 머리까지 톱질하여 세로로 반토막 내는 톱질형이라는 것이 있죠. 톱이 거의 목 부분에 올 때까지 비명을 질러댄다고 하는데요.
이와 같은 물리적 절단은 존재를 중단시키죠. 교도소 독방에 가두어 사회적으로 단절시키는 경우도 있죠.
그냥 죽는 것은 시간적으로 절단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교수형 같은 것은 시간적으로 절단하여 그의 존재를 중단시키는 것을 의미하죠.
전기나 물, 식량공급을 단절하여 불편하게 하거나 삶이 절단되게 할 수 있죠.
대부분의 인간들은 시간적으로 절단이 되는데 몸이 절단되는 것이나 결과가 같죠.
현 인간 세상은 영적으로 소외되어 있습니다. 빛이 단절되어 있죠. 필연적으로 시간적인 절단을 겪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간은 시간이라는 칼날에 참수되는 것을 자력으로 피할 수 없습니다.
시간에 대한 의식의 중단은 시간에 의한 절단은 아닙니다. 매일 몇 시간씩은 시간을 의식하지 못하죠. 일시적으로 삶이 중단되고 잠자고 있는 것으로 간주되는 사람들도요.
인간은 몸이 물리적으로 절단되는 것보다 영적으로 단절되어 시간에 의한 절단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한 번 그렇게 되면 시간 가운데 영원히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을 의미하니까요.
자아의 영구적인 연속성을 상실하지 않는 인간이 되려면 영적으로 단절된 세상에서 나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