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내의 한계
자녀는 부모의 흉내를 내기 마련이죠. 말은 잘 안 들어도요.
인간은 창조주의 형상대로 만들어졌죠. 흉내를 내는 것은 당연합니다. AI로봇을 만들고자 하죠. 인간이상의 지능과 능력을 가진. 이미 인간들이 만든 것들 중에는 인간보다 비교할 수 없이 기능이 월등한 것들이 많죠.
계산자체도 월등히 빠르고 정확하죠. 모든 일을 로봇 혹은 시스템이 대체할 것입니다. 일과 관련해서는요. 인간은 즐기는 일만 하게 될 것입니까? 배후에서 통제하는 것과요.
몇몇 영화에는 로봇들이 인간들에게 저항하는 스토리를 다루죠. 그리고 많은 영화에는 핵사용으로 인한 파멸도 다루고 있습니다. 로봇영화들에도 연계해서 등장하죠.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진 로봇이라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창조자를 향해 반역적으로 행동해 왔죠. 사로 사랑하면서 행복하도록 한 것인데 서로 죽이고 파괴하죠.
첫 인간 부부마저도 특정 과일을 먹지 말라는 명령조차 순종하지 않았죠. 천사들도 조직적인 반란을 일으켰다고 할 수 있습니다.
피조물에서 일어난 양상을 흉내 내고자 하는 것입니까?
인류는 부모의 지도가 싫다고 가출한 아이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독립해서 뭔가 해보려 하지만 실패는 운명적인 것입니다.
창조의 흉내는 내어 독자적으로 해보려 하지만 결과는 파멸적이죠. 말 안 듣는 흉내의 한계입니다.
부모는 결코 창조활동을 하지 못하게 한 것이 아닙니다. 올바른 창조를 위한 지침을 제공하려 한 것뿐이죠.
인간의 창작이라고 하는 모든 소위 작품들에는 범죄가 들어 있습니다. 첫 장면부터 자극적인 범죄 장면들이 연출되는 경우가 많죠. 그렇지 않은 작품을 만들지 못할 정도로 불구가 된 것입니다. 정신이요. 그야말로 미친 정신이죠. 그걸 만든 사람이나 그 역겨운 것을 재미있다고 보는 사람이나요. 가출하여 나쁜 친구들을 사귄 결과입니다.
인간들은 흉내를 내는 것보다 말을 잘 듣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렇지 않고 흉내만 내려하는 것은 자멸에 이를 뿐입니다.
너무 아깝지 않습니까? 창조주를 닮은 그 무한한 가능성을 왜 그렇게 악하게 파괴적으로 사용하는 것입니까? 꼭 범죄를 스토리로 만드는 방식으로 상상력을 사용해야 하는 것입니까? 너무 역겨워서 내쳐질 수밖에 없게요. 스포츠 같은 것을 고안해서 꼭 승부를 붙여봐야 하는 것입니까? 꼭 돈과 관련시켜야 하는 것입니까? 미쳐도 더럽게 미쳐있습니다.
멸망시키고 싶은 증오심이 생기는 것이 비정상적이지만은 않습니다. 어떤 영화에서도 주인공이 “이 빌어먹을 세상!”하면서 지구 전체를 파괴하는 핵버튼을 누르는 것으로 영화가 끝나죠.
홍수로 싹쓸이한 것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인간도 흉내를 내어 싹쓸이 파괴를 하는 장면들을 종종 연출하죠.
창조의 법에 순종하지 않고 하는 모든 흉내는 파멸적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