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는
태어나서 개가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될까요? 특별한 훈련을 받으면 인간을 위해 그 훈련받은 행동을 하는 것 정도일 것입니다.
개의 행복은요? 먹는 것, 주인이 만져주는 것, 함께 산책하는 것 정도일까요?
할 수 있는 일의 종류와 느낄 수 있는 행복의 종류와는 비교가 안 되죠.
인간에게 길들여진 동물들은 인간이 만져 주는 것을 축복으로 여기는 것 같습니다. 아주 좋아합니다. 그렇게 좋아하는 것이 흐뭇하여 자꾸 만져 주게 되죠. 서로 간에 이런 행복을 느끼는 것은 창조에 반영된 사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식물들도 예뻐해 주면 더 잘 자란다고도 합니다.
약손이라는 말도 있는데 인간들 사이에도 단지 쓰다듬어 주는 것으로 심리적, 생리적으로 유익을 얻는 경우가 많습니다. 애무는 그중에서도 격렬한 것이라 할 수 있죠.
말하고자 하는 것은 동물과 인간의 근본적인 차이입니다. 계통수라는 것 자체가 전적으로 사기이지만 정말로 사악한 사기죠. 인간은 동물의 계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창조 신호의 성격과 종류가 기본적으로 다르다고 합니다.
모든 동물은 인간에게 길들여질 수 있습니다. 인간에게 순종적이 되게 할 수 있죠. 본능이죠. 그렇게 프로그램되어 있어 인간에게 길들여지면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리고 동물은 죽을 때 일종의 생물학적 쾌감을 느낀다고도 합니다. 인간에게 쓰다듬어지고 밥도 얻어먹고 산책도 함께 다니다가 행복하게 죽는 것이죠. 평생 할 수 있는 것이 한정되어 있습니다.
주인에게 이를 드러내면서 으르렁 거리고 물기도 하는 개는 쫓겨나죠.
인간에게 평생이라고 하는 것은 영생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무한합니다. 잠재능력도요. 느낄 수 있는 감각이나 감정도 그렇죠.
그러나 인간들은 으르렁거리는 개들과 같죠. 그 주인인 창조주에게 결코 순종적이 아닙니다. 주인으로 여기지도 않죠. 말을 안 듣는 것은 물론이고요.
주인의 아들(예수)과 종(제자)들을 물어 죽이기도 했죠.
서로 간에도 물어뜯어 죽이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죠. 단지 으르렁 거리는 정도가 아닙니다.
“개같이 벌어 정승 같이 쓰자”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탐욕 또한 이루 말할 수 없죠.
과연 개보다 나은 점이 있기는 한 것입니까? 그러니 차라리 개와 같이 사는 것입니다.
개들이라고 하는 인간들은 지구에서 살 수 없습니다. 곧 쫓겨나 죽게 되죠. 누가 그런 개들을
먹여주고 만져주고 함께 산책을 다닙니까?
창조주와 함께 살 자격을 상실한, 개보다 못한 인간들의 운명은 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