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극단
매우 오래전에 본 다큐인데요. 나체로 사는 아프리카의 한 종족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전라였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습니다. 회색과 구릿빛이 섞인 피부정도는 희미하게 기억납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 세계 여성의 복장은 몸 전체를 두르는 것이었습니다. 회교지역은 더 심하였죠. 20세기 초 중반의 영화에도 피부가 노출된 의상을 입은 여성의 등장은 집중 비난의 대상이었죠. 바지가 허용된 것도 그렇게 오래전은 아닙니다. 갈라져서 자극이 될 수 있다 하여 꺼림칙하게 여겨졌던 것이죠.
그런데 그냥 다 드러내놓고 살다니요. 나무로 만든 큰 테이블에 식사를 함께 하기 위해 죽 둘러앉았는데 한 남자가 옆에 앉은 젊은 여인의 젖꼭지를 만지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은 주목조차 하지 않는 대수롭지 않은 것이었죠. 그 여인의 하는 말은 “난 너 별로 안 좋아해”였습니다. 행동을 중단하라는 것이죠.
인간의 문화란 일종의 사회적 강요일 수 있죠.
신념에 따라 인위적으로 형성된 문화도 있습니다. 나체주의자들의 문화 같은 것이죠. 회원이 수만이라고 하는데 그들이 집단으로 거하는 곳은 마치 대중목욕탕과 같죠. 입는 것이 비난의 대상이죠. 입으려면 그 단체의 회원이 되지 말아야죠. 그래도 신입은 한 달 정도는 팬티정도는 허용해 준다고 합니다.
유럽에는 종종 나체의 남녀가 스스럼없이 거리를 활보하긴 하는데 지나는 사람들의 눈길도 그저 예사로운 정도입니다. 성적인 자극이 된다는 느낌도 전혀 없죠.
전라의 패션쇼도 종종 있죠. 벗은 사람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죠. 보는 사람들의 눈길도 그다지 호기심 어린것도 아닙니다. 고깃덩어리를 보는 정도라고나 할까요?
한국의 한 영화에는 승려가 죽기 전에 젊은 여신도에게 알몸을 보여 달라고 요구하죠. 자신은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 신도는 고분고분 응해주죠. 그러고 나서 그 승려는 평화롭게 죽었답니다.
인간의 성에 관한 의식이 얼마나 다양할 수 있음을 보여주죠.
피부가 일부 살짝 노출되어도 성적으로 강한 자극이 된다고 하기도 하고 전라를 보아도 아무렇지도 않은 경우가 있는 것이죠. 오히려 “좀 입고 다녀”라고 질책받을 수 있죠.
아담과 하와는 서로의 알몸에 대해 어떤 의식을 갖은것일까요?
말하고자 하는 것은 성의식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모든 면으로 올바른 의식을 갖는 중요성을 깨달을 필요가 있습니다.
형성된 의식들은 지역마다 시대마다 다른 올바를 수 없는 것이죠. 선전에 의해 형성된 것들도 많고요.
이미 인류는 혼란과 혼동에 빠져 있죠. 자신에 대한 통치에 절망적으로 실패하여 노예상태이죠.
스스로에게서 그렇게 된 처참함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