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법칙
인간에게 어떤 생각도 떠오를 수 있고 어떤 꼭 필요한 생각이 전혀 떠오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좋은 생각도 나쁜 생각도요.
떠오른 생각이 나쁜 생각이면 바로 차단을 해야죠. 그렇지 않고 상상력을 사용하여 발전시키면, 그것을 욕망으로 발전시키면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면 견디기 힘들게 되어 있죠. 그것이 어떤 악행이라도 그 행동을 다 완료할 때까지 우주는 그것을 제지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 행동의 결과에 대해서는 반드시 관장이 되어 그 상응하는 대가를 반드시 치루죠.
그런데 그 와중에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과 슬픔을 겪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법칙은 그 점을 참작하지는 않죠. 어떤 행동이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이 자유의 법칙이거든요.
법칙은 결과와 인간의 개인의 상황을 조금도 참작하지 않죠. 그 행동이 개인들에게 아무리 끔찍한 결과를 산출한다 하더라도요. 인간들은 서로 제지하는 행동을 할 수 있죠. 그렇게 하는 것도 자유이니까요.
그러나 창조주는 스스로 만든 법칙을 스스로 깨트리지 않죠. 결과에 대한 문책을 반드시 한다는 것도 법칙입니다.
인간이 어떤 극악무도한 행동을 하고 그로 인해 많은 사람이 고통을 겪어도 방치되고 있기 때문에 하느님의 존재 자체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되죠. 존재하더라도 인간사에 관심이 없다고 단정해버리는 것입니다.
물론 단지 한시적입니다.
보아라! 하느님의 천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다. 그분이 그들과 함께 거하실 것이며, 그들은 그분의 백성이 될 것이다. 하느님께서 친히 그들과 함께 계실 것이다. 그분은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 더 이상 죽음이 없고, 슬픔과 부르짖음과 고통도 더는 없을 것이다. 이전 것들이 다 사라져 버린 것이다.”(계시 21:3,4)
지금은 하느님이 존재하지만 친히 함께 계시는 상황은 아니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들이라 할 수 있죠.
또 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다. 이전의 하늘과 이전의 땅은 사라졌고(계시 21:1)
하늘과 땅은 통치와 피통치를 의미합니다. 세상의 인간들의 통치와 그 통치하에 있는 인간들이 모두 사라지죠. 하늘왕국의 천년통치와 그 통치를 받는 의로운 지상신민만이 존재하게 되죠.
그리고 왕좌에 앉아 계신 분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보아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한다.”(계시 21:5)
세상의 통치와 그 아래 있던 모든 존재들은 말끔하게 제거됩니다.
그렇게 되는 것도 당연히 법칙입니다. 자유도 법칙이고 멸망도 법칙이고 창조목적의 성취 또한 그러하죠.
멸망되는 사람은 자유의 선택으로 자초하는 것이죠. 영원한 행복도 그러합니다.
둘 다 법칙에 의한 것으로 여지가 없습니다. 선택하는 대로 반드시 그렇게 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