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도

by 법칙전달자

조금도


모든 뉴스를 안 본지가 꽤 됐지만 조금도 궁금하지가 않습니다. 그렇게 된 것은 정말 다행이죠. 궁금하면 갈등이 생기니까요.


‘궁금하다’는 것은 몇 가지 의미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무엇이 보고 싶거나 먹고 싶거나 하고 싶을 때도 그 표현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런 욕망이 생기지 않는 것도 다행이죠.


저는 제 이름이나 나이, 현거주지나 출생지 등이 모두 싫고 또 직업이 없는 것은 다행으로 여기므로 그런 것을 소개하지 않습니다. 대접받기를 원하는 대로 대접하라는 원칙도 있고 해서 저는 타인의 그러한 점도 조금도 궁금하지 않습니다. 알고 싶지 않은 것이죠. 굳이 소개하려 한다면 말리지는 않지만 금방 잊어버립니다. 또한 사람을 부를 일도 없기에 이름도 필요 없죠.


그런데 사람을 만나면 설레죠. 그에게 최대한 집중합니다. 그가 저의 삶의 한 목적인 것처럼.


그와의 교제를 최대한 만끽하죠. 헤어지는 시간이 아쉬울 정도로요. 그다음부터는 만나기만 해도 행복감을 느낍니다. 동료인간에 대한 본능적인 존중심과 사랑 때문이죠. 그렇게 하는 것이 저에게 행복하기 때문에 진실로 그렇게 하게 됩니다.


그의 껍데기에 대해서는 호기심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가 먼저 적극적으로 말해 주는 경우에는 대화에 참고 삼기는 하지만요. 그를 연상할 때는 이름으로가 아니라 영혼으로 그렇게 하죠.


결혼식이나 장례식 같은 거의 모든 의식에도 참여하지 않습니다. 의식 자체는 짜증이 나죠. 인간의 어떤 겉치레들이요.


물론 심하게 비정상적인 측면이 있고 전혀 타인에게 권고할 만한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비난은 일종의 희생으로 여깁니다.


물론 저 이상으로 극단적으로 그런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비본질적인 면을 그처럼 희생하는 것은 오히려 큰 유익이 됩니다. 행복하고 황홀한 숲 산책을 만끽하게 되어 큰 감사를 하게 되는 것도, 거의 하루 중일 듣다시피 하는 음악에도 지루함 없는 강한 행복을 지속하게 되는 것도 그런 가치관을 갖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되죠.


뉴스에 관심이 전혀 없는 정도가 아니라 기피하게 되는 태도가 그러하며 껍데기에 대한 무관심한 정신 상태가 그러하죠.


껍데기가 보이지 않는 눈을 갖게 된 것도요. 비정상적이긴 한데 의도적으로 외면하게 되기도 합니다.


대개 사람들은 필수적인 것도 결여되어 있을 정도로 속이 비어있습니다. 대신 쓰레기로 차 있죠.


쓰레기에 귀를 기울이고 주목하면서 희로애락을 느끼죠. 그 악하고 더럽고 저급한 것들에요.


차라리 껍데기가 없는 것이 다행입니다. 좀 극단적으로 말한다면요. 도무지 알고 싶지도 않고 조금의 필요를 느끼지도 않는 것이죠. 혐오스러운 것은 아닐 수 있어도 가까이 두고 싶지 않은 것들이죠.


그런 태도에 대한 비난은 얼마든지 감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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