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적 통찰력
예사롭지 않은
언어적 통찰력
수사법에는 비유법, 강조법, 변화법이 있죠. 비유법에는 은유법, 직유법 ...... 등등이 있죠. 강조법과 변화법에도 하위 구분이 있습니다.
각각의 사전에는 어휘에 대한 정의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전은 수십만 어휘를 다루죠.
어휘에 대한 언어적 의미와 논리적 개념에는 또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명사(名師)와 명사(名辭)의 차이인 것이죠.
어떤 개념 혹은 의미를 수사법(修辭法)이라고 표현하는 것 자체도 예사로운 것은 아닙니다. 누군가가 처음으로 그렇게 조어한 사람이 있겠죠. 수사학(修辭學)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학문적인 용어는 거의 모두가 한자어로 되어있죠.
이와 같은 언어, 논리의 영역은 지성의 영역에 속합니다. 인문학에도 속하죠. 인간이 자력으로 분명한 진리를 찾아낼 수 있는 분야입니다.
뉴턴이나 아인슈타인이 물리학에서 그러했던 것처럼요.
문법, 수사, 의미와 같은 구분 그리고 수사에 비유, 강조, 변화가 있다는 것 등등 이러한 발견을 해내는 것은 당연하거나 예사로운 것이 아닙니다. 낱말의 정의를 하여 사전을 만드는 일도요.
그러한 발견을 집대성하고 체계화한 것을 학교에서나 다른 통로를 통해 배운다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당연하게만 여길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렇게 한 대부분 무명의 어떤 인물에게 큰 감사를 느낄 일이죠.
그런 인간이 그렇게 할 수 있는 기능은 창조주로부터 부여받은 것입니다. 이점을 더 확연하게 의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면 막연하게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감사와 찬양을 드릴 수 있죠.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 물질적이고 감성적이고 지성적인 모든 것은 조금도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항상 큰 감사를 느끼고 그것이 그렇게 주어진 목적과 일치하게 사용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