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한 겸허

by 법칙전달자

진지한 겸허


사람의 행복과 생존에 겸허가 필수이기 때문에 자신이 실제로 겸허한 사람인지를 진지하게 살펴보아야 합니다.


겸허란 자신의 모든 측면에 대한 올바른 평가를 의미합니다.


무수한 측면 중 하나만 살펴봅니다.


‘지식-이해-지혜’라는 원칙이 있습니다.


어떤 지식을 이해해야 실천에 옮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문구를 외우고 있음은 지식도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알고 있는 것하고 사랑이라는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은 별개이죠.


또 지식은 본질적 이해가 되지 않으면 그것을 적용시켜 물건을 만들 수도 일상에서 그에 따라 행동할 수도 없습니다.


나는 참하느님의 일을 모두 살펴보며 해 아래서 일어나는 일을 인간이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은 아무리 노력해도 이해할 수 없다. 설사 자기가 알 만큼 지혜롭다고 주장하더라도 실제로는 이해할 수 없다.(전도 8;17)


들나귀가 사람을 낳을 수 있다면 무지한 사람도 이해력을 갖게 될 걸세.(욥기 11:12)


그런데 인간은 이해하기가 불가능하다고 하는 것이죠.


이해력을 얻으려고 외쳐 부르며 분별력을 얻으려고 목소리를 높인다면(잠 2:3)


아들들아, 아버지의 징계를 잘 듣고 주의를 기울여 이해력을 얻도록 하여라. ... 지혜와 이해력을 얻어라.(잠언 4)


올바른 판결을 내리는 데 필요한 이해력을 요청하였으니, 내가 네 청을 들어주겠다. 내가 너에게 지혜롭고 이해력 있는 마음을 줄 것이다.(왕상 3:11,12)


이해력은 꼭 필요한 것이고 하느님이 주실 수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인간은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므로 행하지 못합니다. 모든 문제에 대한 해결책인데요.


사람은 자기보다 앞서 있었던 사랑과 미움을 알지 못한다.(전도 9:1ㄴ)


세상에는 온전하게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산재되어 있죠. 이해력이 없는 것이 원인입니다.


그리고 창조주와 개인적 관계를 갖지 않고 또한 그분의 조직적 마련을 통해 교육을 받지 않는 사람은 이해력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무능한 채로 살다 죽는 것이죠.


그러므로 자신이 무엇을 진정으로 알고 있는지에 대해 냉정하게 살펴보아야 합니다. 사랑의 생각과 감정과 행동을 확장시켜 나가고 있지 않다면 사랑에 대해 모르는 것입니다.


소크라테스도 너 자신을 알라고 하고 있죠.


행복을 위해, 생명을 위해 매일 생산적으로 펼쳐나가고 있는 활동이 있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행복도 삶도 뭔지 모르는 것입니다.


얼마나 무지한지 실제로 아는 겸허함은 삶의 기본입니다.


이 겸허함이 무엇이지는 압니까? 그렇다면 창조를 올바로 인식하고 창조주께 진정으로 영적 인도를 구하는 삶을 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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