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적 사유와

by 법칙전달자

철학적 사유와


철학적 사유를 하는 사람은 그것이 반드시 거짓을 산출한다는 진리를 모릅니다.


철학적 사유라는 것은 바둑에서의 수읽기나 수학이나 물리 문제를 풀 때의 그런 사고와는 근본적으로 성격이 다릅니다.


비평과 창작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은 경우에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한국에서는 자신을 낳은 여인을 '엄마'라고 하는데 “왜 꼭 '엄마'라고 해야 하는데?(비평) ‘치키’라고 하면 안 돼?(창작) 하고 생각할 수 있죠.”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한다면 혼란만 야기할 뿐입니다. 유익한 결과는 전혀 없죠.


비평이란 결함을 발견하는 것을 의미할 수 있는데 ‘엄마’라고 하는 것이 의미 있는 결함이라고 할 수 있나요?


어떤 무모하고 맹목적인 의심에 해당될 수 있죠. 물론 그 표현이 언어적으로 이상적이냐 하는 학구적인 호기심을 가질 있죠. 그러나 그 대안으로 ‘치키’라고 하는 것은 결코 그런 식의 순수한 지적인 호기심이 발단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철학이라는 것이 본질상 이와 같습니다. 혼란을 산출할 뿐인 무익한 것입니다.


인간의 노동이나 행동에도 여러 성격의 것이 있습니다.


집을 지을 때, 운동을 할 때, 산책을 할 때, 폭력을 행사할 때, 성추행이나 도박을 할 때의 그 행동의 성격은 각각 다릅니다. 그 목적도 다르죠.


성서나 성서출판물, 과학교과서, 자동차수리교본, 언어학학습교재, 과학미셀러니, 각종에세이집 철학도서, 자기계발서적, 교리문답서, 시집, 소설책 등등도 각각 성격이 다릅니다.


어떤 생각이나 행동, 접하는 말이나 글, 하는 말이나 쓰는 글들도 반드시 선별적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기본 분별이 없기에 버젓이 철학을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정치, 종교, 철학은 단지 해로울 뿐이라는 상식을 가진 사람만이 혼란과 혼동의 노예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철학적 사유라는 것은 반드시 해롭습니다. 정치사상이나 종교교리도 이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것은 위에서 든 예처럼 전혀 논리적이거나 합리적이거나 생산적인 성격을 지니지 않았습니다. 부당하고 해롭고 병적인 의심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인간 본연의 호기심과는 전혀 성격이 다릅니다.


지식이라는 것을 산출하기가 불가능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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