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성과 비천성
눈과 혀, 손과 같은 것들을 돈이 아무리 많아도 만들거나 살 수 있습니까?
인간에게 주어져 있는 것, 인간의 행복을 위해 주어져 있는 것 그리고 그것들이 위하여 주어진 인간 자체는 존엄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함부로 어찌해서는 안 되는 것이죠.
비천성은 인간에 의해 주어집니다. 입으로 넣는 음식이 오염되어 있는 것이면 바로 사망할 수도 있고 어떤 식품들은 장기적으로 섭취하면 성인병의 원인이 되어 장기의 존엄성을 손상시킬 수 있습니다. 눈이나 귀로 부패한 어떤 것들은 보고 들으면 즉 정신에 흡입하면 정신적으로 그런 영향을 주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그 자신을 천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죠. 뇌 자체는 존귀한 것이지만요.
아시리아는 포도들을 잔인하게 대하기로 유명한 나라인데 눈을 빼고 귀나 코 등을 잘라서 밧줄로 줄줄이 엮어서 10일 이상 되는 본국으로 끌고 갔다고 하는데 죽이지 않는다면 밥도 먹여야 되고 잠도 재워야 되고 대소변도 보게 해 주어야죠. 대변이 보고 싶다고 하면 인솔하는 병졸이 어떻게 처리하는 것입니까? 병도 안 걸리게 관리를 하는 것이라면 상당한 신경을 써야 할 것입니다. 강 같은데 들어가라고 해서 목욕을 하라고 하는 경우가 있는 것입니까?
끌러가는 피정복민이나 포로들 자신들도 차라리 죽느니만 못할 텐데 자살도 하지 못하는 상태이죠. 일선에서 감독하는 병졸들에게도 결코 유쾌한 업무는 아닐 것입니다. 앞도 못 보는 자들을 죽지 않게 여러 날 관리한다는 것은. 차라리 죽이는 것은 은혜를 베푸는 것일 텐데 그렇게 끌고 가서 거기서 죽이려 하는 것입니까? 앞도 못 보는 사람들에게 시킬만한 노동이라도 있는 것입니까?
인간 자체를 비천하게 하게 하는 것은 자기 자신과 타인인 것이죠. 존엄한 것을 비천하게 만드는 것이요.
신체와 정신을 병들게 해서 그렇게 비천하게 만들어서 결국은 멈추게 하는 것은 인간들 스스로이죠.
인간들은 존엄한 것을 비천하게 만드는 기술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존엄하다는 원칙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 하기도 하죠. 그래야 비천하게 만든 데 대해 가책을 덜 느낄 수 있죠. 진화론을 고안해 내어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존재라고 하는 것입니다.
짐승들이 먹고 먹히고 죽는 것처럼 인간들이 서로 그렇게 하고 그렇게 되는 것도 당연하다고 하는 것이죠.
인간들에게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존엄성이라는 것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론적으로 합리화해 놓으면 마음껏 비천해도 괜찮게 느끼는 것이죠. 비천이라는 개념 자체도 없습니다. 그냥 그렇게 살다가 죽을 뿐이라는 것이죠. 삶이나 존재 자체가 맹목적이라고 합니다. 그런 주장 자체가 목적을 가진 것이지만요. 지각이 비천하게 되어 이러한 자가당착을 느끼지도 못하죠.
물론 그 생각에 따라 그렇게 될 것입니다.
이런 비천케 하는 영향력은 압도적이어서 비천하게 되지 않은 인간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존엄하게 회복되는 과정은 행복이기도 해서 겸허한 사람들이 도전해 볼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