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의 위엄

by 법칙전달자

지성의 위엄


원래 감성(感性), 오성(悟性), 이성(理性)이었는데 요즘은 오성보다 지성(知性)을 더 많이 쓰는 것 같습니다.


이 글은 용어로써의 지성에 대해 주로 살펴봅니다. ‘아는 성질’이라고 할 수 있죠. 인간이 알아낼 수 있는 영역에 대한 사고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문자연과학을 통괄해서요.


현재는 알지 못하지만 알 가능성이 있거나 인간이 알아낼 수 있는 성질의 것을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럴 가능성이 없거나 그럴 성질이 아닌 것은 지성의 대상이 아니거나 그 영역에 속해있지 않습니다.


이걸 분별할 수 있어야 지성 역시 올바로 사용할 수 있고 지성인이라 할 수 있게 됩니다.


바둑의 어떤 국면에서 최선을 수라는 것은 결국은 밝혀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죠. 너무 어려워서 아직 밝혀지지 못했다 하더라도요. 물리의 많은 영역에 대한 것들도 그렇습니다.


바둑은 순수하게 지성을 사용하는 게임이죠.


인간의 감성은 거의 자동적으로 작동됩니다. 그러나 지성은 그렇지 않죠. 바둑판의 점이나 바둑알의 색이나 위치는 자동으로 파악이 되죠. 그러나 수 읽기의 능력은 극심한 차이가 있습니다.


모든 면에서 지성력의 차이는 현저한 격차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상대적으로 뛰어난 지성을 발휘한 사람은 칭송을 받게 됩니다. 지성의 위엄이라는 것이죠. 바둑의 고수도 명사가 됩니다. 뉴턴이나 아인슈타인과 같은 사람은 더 말할 나위가 없죠.


이성과 관련에서는 이성은 알아내는 능력은 아닙니다. 理에는 알아낸다는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죠. 이성은 ‘아는 성질’은 아닌 것입니다.


‘이해(理解)’의 의미는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理에는 진리, 법칙, 원리, 성질 같은 의미도 있다고 할 수 있고 ‘도리(道理)’의 의미도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중에서 상대성원리 같이 인간이 발견할 수 있는 것도 있죠. 원리라는 것은 모두 그런 것인데 아무튼 이해는 해야 하는 것이죠. 위에 언급된 것들의 공통점은 인간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발견만 할 뿐이라는 것이죠. 자연에 내재되어 있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지성으로 발견할 수 없는 것들이 있죠. 영적인 진리나 도덕적 진리 즉 도리 같은 것입니다. 논리적 진리나 언어적 진리, 심리적 진리 같은 인간이 발견할 수 있으며 원래 그런 성격의 것입니다.


신의 존재나 선악의 기준, 인생의 목적 같은 것은 자연의 법칙처럼 내재된 것이지만 지성으로 발견할 성질의 것이 아니므로 창조주에 의해 선언되어 있죠. 인간이 그에 대해 할 수 있는 것은 이를 이해하고 적용하는 것뿐입니다. 바로 이성의 용도입니다.


이 이성의 용도를 모르면 이성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지성이 뛰어나도 소용이 없죠. 결과는 짐승처럼 죽게 될 것입니다.


칸트의 순수이성 비판이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는 그 이름과 함께 그 지성적 업적도 인간사에 영원히 남을 것입니까?. 그들의 죽음이 영원한 것이라면 그렇게 된다 한들 그들에게 의미가 없죠.


그들이 이성을 올바르게 사용할 것이냐의 여부는 부활 후의 그들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그들의 지성적 탁월한 업적이 그들의 이름으로 영원할 것이냐 하는 것이요.


인간의 지성의 위엄의 지속성은 이성을 올바로 사용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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