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의 왜곡과 가치

by 법칙전달자

지식의 왜곡과 가치


음악영상을 시청할 때 그 보고 듣는 것이 삶의 의미를 부여합니다. 강의나 연설, 낭송을 들을 때도 그러하죠. 각각 성격은 다릅니다. 감성적, 정서적인 것이 있고 영적, 지적인 것이 있죠.


숲산책을 하며 경치를 보며 음악을 듣는 경우에는 걸음을 통한 그리고 맑은 공기와 햇볕을 통한 신체적 유익도 겸하여 얻습니다. 즐거움과 유익을 동시에 얻는 것이죠. 그 자연 가운데 동료와 함께 교제를 나누며 다과라도 함께 한다면 다른 유익도 더해지죠.


대개 즐거운 것은, 행복한 것은 유익을 겸하여 줍니다.


그런데 듣는 것은 음파 보는 것은 전자파에의 한 것이라고 하면서 ...... 나중에는 모든 것이 파동이며 인간의 의식이라고 하는 것도 ...... 하면서 과학적인 듯하면서도 신비주의적 언어로 철학과 종교의 냄새가 나는 사상으로 유도하는 말들을 볼 수 있습니다. 대개 뉴에이지류의 사상도 그러합니다.


인간이 겪는 원치 않는 현실을 그런 것으로 벗어나거나 초월하여 신적인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죠.


불교, 도교, 힌두교의 교리들도 양자역학이나 뇌과학의 지식과 접목하여 설명하려 하는데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고래로부터도 오컬트화된 신비주의적 사상들이 있었죠.


소리를 듣고 영상을 보는 것이 파동에 의한 것이라는 지식 또 이에서 파생된 지식들이 참된 행복과 유익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습니까? 보고 듣는 것을 선별하는 영적 도덕적 지식, 또한 보고 들은 지식을 근거로 추리하고 적용하여 얻게 되는 유익에 견줄 수 있는 그런 가치가 있습니까?


중력이나 광속불변이라는 지식을 갖게 된 후 인간은 그것 때문에 일상에서 얼마나 더 큰 행복과 유익을 얻게 된 것입니까? 그것을 모르던 시대에 살았던 인간들에 비해서요.


영적인 도덕적인 진리를 무시하고 물질적인 것과 과학적인 지식으로 인간이 행복할 수 있습니까? 세상의 모습과 인간 개개인의 모습은 전혀 그렇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그런 것에는 오히려 불행과 파멸로 유인하는 어떤 덫과 같은 것이 숨겨져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 것들이 사용되는 방법을 보더라도 분명히 알 수 있죠.


사람을 사랑이 점점 더해가는 존재로 발전시키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어떤 과학적인 신비주의적 지식을 활용하여 새벽기도나 명상을 하면 끌어당김의 법칙에 의해 우주의 기운이, 양자장이 그의 소원하는 바대로 사업이 잘되어 부자가 되도록 해줄 것입니까?


얼마나 큰 왜곡이, 덫이 도사리고 있는지만 확인될 뿐입니다.


인간은 자신도 모르게 속고 속이는 존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말씀에 고착하지 않는다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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