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에 대해 죽나?
죽으면 눈도 깜짝하지 못하고 손가락도 까딱하지 못합니다. 완전 무능, 불능이죠. 보지도 만지지도 못합니다.
아무도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여러분을 사로잡지 못하게 조심하십시오. 그것들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보적인 것들에서 나온 것(골로새 2:8)
세상의 초보적인 것들에 대해 죽었다(골로새 2:20)
철학을 비롯하여 사람을 속이는 것들을 초보적인 것으로 규정합니다. 그런 것들에 대해서 죽은 것처럼 되어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죽었고(골로새 3:3ㄱ)
성적 부도덕, 더러움, 무절제한 성욕, 해로운 욕망, 탐욕과 관련해 땅에 속한 여러분의 몸의 지체를 죽이십시오.(골로새 3:5)
죽여야 할 것들이 또 있죠. 그릇된 욕망입니다. 혼란과 고통을 주는 것들이죠.
어떤 철학이 방황에서 온전히 벗어나 정신적 평화를 가져다줍니까? 목표를 모르는 어린아이가 이리저리 맴돌다가 지쳐 쓰러지듯이 혼란에서 방황하다 포기하게 하는 초보적인 것입니다.
그것은 진리라는 목표에 도달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하는 것입니다. 평화도 행복도 풍요도 가져다주지 못합니다.
그런 것과 관련해서는 죽는 것이 좋은 것이죠. 호기심을 가지고 들여다보려고 할 필요도 관련된 책을 만지작거릴 필요도 없습니다. 음란물을 보려고 실눈을 뜨거나 손가락으로 클릭을 시도하지 않는 것이 좋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인간들이 구역질 나는 멸성의 존재가 된 원인이죠.
욕망이라는 것은 필요하지 않은 것에 대한 추구, 해로운 결국은 치명적인 고통을 주는 것에 대한 추구를 의미합니다. 당연히 그런 것을 자극하거나 발전시킬 수 있는 모든 것들은 철저히 차단할 필요가 있는 것이죠.
그렇다고 해서 어떤 금욕적인 철학이나 교리를 따르라는 의미도 전혀 아닙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와 함께 세상의 초보적인 것들에 대해 죽었다면, 왜 아직도 세상에 속한 사람들처럼 살면서 “손대지 말라, 맛보지 말라, 만지지 말라”는 법령들에 복종하고 있습니까? 그 법령들은 모두 쓰고 나면 없어지는 것들에 관한 것으로, 사람의 명령과 가르침에 따른 것이 아닙니까? 그런 것들은 자기 뜻에 따른 숭배 방식과 거짓 겸손 곧 몸을 학대하는 데에는 지혜로워 보이지만, 육체의 욕망과 싸우는 데에는 아무 가치가 없습니다.(골로새 2:20~23)
자기 뜻에 따른 것이라고 하는 것이죠. 마음에 악에 대한 강한 혐오감과 증오심이 있다면 거짓 겸손이나 몸을 학대하는 부자연스러운 방법에 의존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릇된 일을 행하는 사람은 자기가 한 그릇된 일에 대해 대가를 치르게 될 것입니다. 거기에는 차별이 없습니다.(골로새 3:25)
인간의 그릇된 행동은 나름의 철학과 그에 의해 정당화된 욕망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세상자체의 장면은 그릇됨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 곧 육체의 욕망과 눈의 욕망과 살림살이의 과시는 아버지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지나가고 있으며 세상의 욕망도 지나가고 있습니다.(요한 1서 2:16,17)
그런 것들에 대해서 죽으면 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