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되려면
사람이 사람이 되려면 즉 사람으로서의 본연의 가치와 보람과 행복을 누리려면 사람으로서의 존재와 생명을 있게 한 근원에 대한 합당한 태도와 관계는 기본이며 필연입니다. 인류의 0.1% 정도가 그런 관계를 누리고 있죠.
먼저 삶이 보장되어야 사람이라 할 수 있죠. 죽게 될 인간은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생명나무는 이 삶의 보장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은 여러모로 구원이 필요한 상태입니다. 외부로부터는 사람과 자연으로부터의 오는 재앙들이 있죠. 전쟁과 테러, 범죄, 압제, 불공정, 지진이나 홍수 같은 자연재해, 전염병 등등. 가난과 질병. 노쇠 죽음 등등으로부터의 구원도 필요합니다.
그런 것의 위협과 압박을 받는 불안한 상태에서 그 무엇을 진정으로 누릴 수 있단 말입니까?
영감 받은 말씀은 만사의 최종결론입니다.
풍성한 구원, 지혜, 지식, 여호와에 대한 두려움을 주시는 분(이사야 33:6)
풍성한 구원이 가장 먼저 언급되어 있죠. 창조주에 대한 두려움이 마지막으로 언급되어 있습니다. 이에는 깊은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마음에 영원이라는 개념을 넣어 두셨다. 하지만 인간은 결코 참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찾아내지는 못한다.
참하느님께서 만드시는 모든 것이 영원하다는 것을 내가 알게 되었는데, 거기에 아무것도 더하거나 뺄 수 없다. 사람들이 그분을 두려워하도록 참하느님께서 그렇게 만드신 것이다.(전도 3:11,14)
모든 것을 들려주었으니, 결론은 이러하다. 참하느님을 두려워하고 그분의 계명을 지켜라.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다.(잔도 12:13)
창조주에 대한 경건하고 합당한 두려움이 없는 인간은 결국 사람이 되지 못합니다. 살지 못합니다.
인간이 서두에 언급된 모든 것들로부터 풍성한 구원을 얻었다 해도 창조주에 대한 숭배는 영원한 것이 되어야 합니다.
처음 언급된 성구의 중간에 지혜와 지식이 언급되어 있죠.
인간은 영원히 살면서 지식을 증가시키고 지혜를 확장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결코 궁극의 본질을 알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죠.
인간 스스로도 아무리 무한한 성능의 현미경과 망원경을 만들어도 미시세계나 거시세계의 궁극을 알 수 없다고 합니다. 인간의 속성이죠. 외경감, 경외심을 느끼는 것도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합니다.
고의적으로 억지로 거부하지만 않는다면요.
그리고 경건한 두려움은 인간의 큰 영적 행복 가운데 하나입니다.
고의적으로 외면하는 자들은 전혀 맛볼 수 없는 행복이죠.
이 글을 보는 분들도 아마 거의 모두가 이 0.1%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안타깝긴 합니다만 아직 기회는 있습니다. 사람이 될 수 있는 기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