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하지 않은
우주의 전체 질량은 동일하게 계속 존재를 유지한다고 합니다. 중력 같이 질량이 없는 것들도 그러합니다. 인간은 중력세를 내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중력의 혜택을 받고 있는데도요. 그것은 조금도 소모되지 않고 항상성을 유지하죠.
태양에서 오는 빛과 열은 성격이 다릅니다. 그것은 힘이 아니라 에너지로서 전자를 계속 소모시키고 있죠. 지구나 태양의 자기력과도 성격이 다릅니다.
그래도 빛과 열은 적어도 수 십억 년은 같은 정도로 발산된다고 하니 100살도 못 사는 현인간이 걱정할 바는 아니죠.
인간이 인공적으로 만든 빛과 열 즉 전등이나 전열기에 대해서는 비용을 치루죠. 그것은 뭔가를 계속 소모시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본질적으로는 다른 종류의 에너지로 전환되는 것이고 전체 에너지는 변함이 없다고 하니까요. ‘... 보존의 법칙’이라는 것들이 있습니다.
인간은 어떤 원인으로 중력 같은 것들이 같은 정도로 유지되는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영원히 알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이 간명하게 선언되어 있습니다.
모든 것을 강력한 말씀으로 계속 존재하게 하십니다.(히브리 1:3)
계속 존재하게 하는 것은 로고스라는 것이죠. 로고스는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 글은 제 생각언어를 글 언어로 바꾼 것이죠. 그리고 그 생각언어는 글언어나 말언어를 보고 형성된 것입니다. 언사가 만사라는 말도 있죠.
글이나 소리가 언어(로고스)가 되는 것은 매우 신비한 현상입니다. 지각에 섬광을 일으키는 것이죠.
인간은 태어나서 부모가 선언한 것을 대상의 명칭으로 받아들입니다.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불가능하죠. 그렇게 해서 터득하게 된 그 언어로 그 언명 자체를 부인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죠.
인간에게 일반화되어 있는 어처구니없는 반역이 바로 그것이죠.
인간이 지닌 모든 기능과 그 존재 자체 그리고 그 존재를 가능하게 하는 지구나 지구의 중력을 포함한 무수한 모든 것들은 일방적으로 부여받은 것입니다.
그와 관련된 것들은 그 존재의 근원에 의해 선언되어 있습니다. 만물은 말씀으로 있게 되었고 그 있음이 유지된다는 점을 비롯해서요.
그 선언들에 의심을 품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자가당착입니다. 존재가 중단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의심’ 자체가 일종의 언어, 개념 즉 로고스입니다. 물론 합리적인 의심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의심할 성격이 전혀 아닌 것에 대해 의심을 고착화하여 그로부터 나온 모든 철학은 사람들을 그 황당하기 짝이 없는 불치병에 감염시켜 결국 생명을 영원히 상실하게 만듭니다.
말씀은 철학이나 신학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모든 사고활동을 가능케 하는 기본조건이고 바탕입니다.
중력이 전혀 보이지 않아도 그 존재를 확신하듯이, 그 중력을 존재하게 하고 유지되게 하는 근원인 말씀의 확실성은 절대적입니다.
말씀에 따르지 않는 모든 사람은 불속에 뛰어들어도 아무런 해를 입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실제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과 같은 결과를 겪게 됩니다.
말씀을 인정하고 적용하는 사람만 그 말씀에 의해 계속 존재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