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것은
거리의 모든 건물들은 크기, 모양, 색에 있어 다 다릅니다. 물론 의도적으로 똑 같이 만든 경우는 제외하고요. 차들도 그러하죠.
숲의 나무들도 다 그렇습니다.
이처럼 다양함은 만물의 한 속성입니다. 그러나 모든 건물들은 다 건물이죠. 나무들은 다 나무이고요.
건물들과 나무들, 모든 것들은 그 기본적인 특성들이 있습니다. 그런 것들은 당연히 지켜지는 것들이죠. 물로 건물을 짓는 것은 불가능하죠. 한국에는 아마 얼음으로 만들어진 건물이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공기로 집을 짓는 것은 불가능하죠.
두꺼운 종이로 건물인 것처럼 보이는 것을 만드는 것은 가능하지만 실제 건물로서의 역할은 전혀 못합니다. 나무로 자동차 엔진을 만들 수 있나요?
만물은 인공물이건 자연물이건 그 존재목적에 맞는 기본적인 특성이 있습니다. 일시적으로 겉보기가 비슷하게 보이는 것은 말들 수 있죠. 진흙으로 나무형상을 만들 수 있지만 나무로서의 기능을 갖게 할 수는 없습니다.
왜 이런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바다 위에 건물을 지을 수는 없죠. 호랑이를 물속 깊은 것에서 발견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있어서는 안 되는 곳에 있는 것이죠. “없을 곳에 있는 것”이라는 표현도 있습니다.
결론은 있지 말아야 할 종교, 정치, 국가, 철학들이 마치 만물의 속성인 다양성을 버젓이 띄면서 기만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건물이나 나무들이 다양한 것처럼 그런 식으로 다양한 것은 당연하다는 듯이 위장하면서 존재한다는 것이죠.
그것은 하늘 위에서 고래를 만나는 것처럼 해괴한 현상입니다.
그런 것은 종이로 화려하게 미혹적으로 만든 건물 같아서 실제 그 안에서 삶다운 생활과 활동을 할 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것들의 존재는 찰나가 될 것입니다. 그 안에 몸을 담고 있는 어떤 인간도 안정된 삶을 누릴 수 없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하나만 있어야 하고 어떤 면에서는 있지 말아야 할 것이 다양하게 잘못 존재하는 것들입니다.
건물은 건물로서, 나무는 나모로서 기본 특성들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모든 건물은 건물로서 획일적이고 모든 나무들은 나무라는 단일 명칭으로 불리는 것입니다.
철학이라는 것은 있어서는 안 되며 사상이라면 진리 하나만 있어야죠. 종교라는 것은 있어서는 안 되며 숭배라는 것은 창조주에 대한 숭배 하나만 있어야 하죠.
정치, 정부, 국가, 통치자라는 것은 있어서는 안 되며 그 점과 관련해서는 창조주의 통치, 그분의 나라 하나만 존재해야 합니다.
동성애, 수간 같은 것은 다양성의 하나가 결코 아닙니다. 성과 관련해서는 배우자와의 관계가 유일한 것이 되어야죠.
눈은 눈썹 아래 두 개가 가로방향으로 놓여 있어야 하죠. 세로나 사선방향으로, 볼이나 턱에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죠. 그런 것은 결코 다양성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종교들이나 정파들, 나라들, 철학사상들은 그 위치와 모양과 방향과 수를 자기 멋대로 배치해 놓고 다양성이라 주장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구구단은 통일된 하나이지만 그것을 적용하여 무수한 다양한 계산들을 할 수 있는 것처럼 인간에게는 하나의 성대가 목안에 불어 있지만 무한한 다양한 소리를 낼 수 있는 것처럼 만물에 속성으로 부여된 다양성을 올바로 인식하고 활용할 때만 유익하고 행복할 수 있습니다.
눈을 손바닥으로 이식해 올바로 볼 수 있게 되는 것을 상상할 수 있습니까?
있지 말아야 할 것이 다양하게 있는 것들은 인간에게 해롭게만 작용할 뿐입니다.
세상의 정치는 인간을 얼마나 불안하게 하고 있습니까? 어떤 종교와 철학이 인간에게 현재에서도 만족스러운 삶을 살게 해주고 있습니까? 불가능합니다. 어떤 경제도 인간에게 만족스러운 부를 가져다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정권을 붕괴시키는 시위도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까?
있지 말아야 할 것들이 다양하게 있는 것이 그 원인임을 알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