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가
불안의 뿌리는 허무에 있다고 합니다. 존재가 보장되지 않는 것이 원인이죠.
에덴에는 두 그루의 상징적인 나무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선악과 하나는 생명나무이지요. 생명나무는 선악과를 먹지 않는 한 존재의 연속성의 보증 혹은 보장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이 존재를 보장할 수 없죠. 인간은 그저 존재에 대한 최대한의 소망이 노환에 의한 사망정도입니다.
인간이 전적으로 수동적인 면은 한둘이 아닙니다. 인간에게는 무한한 한계가 있고 그 한계를 인식하는 겸허는 기본입니다. 그 점에 대한 주제넘음은 존재중단 원인의 일순위입니다.
인간은 그 겸허와 일치하게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해야 하는 것이죠.
선악에 대한 규정 혹은 표준은 중력처럼 자연에 내재되어 있는 것입니다. 도덕법칙이죠.
인간이 어찌할 수 없이 일방적으로 순응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임의적 가치관은 법칙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인간은 통치를 위한 법을 만들 수도 없습니다. 법치국가란 어불성설입니다.
그렇게 하는 모든 것은 벼랑 위에서 뛰어내리면서 팔을 휘저어 하늘을 날게 될 것을 기대하는 것과 같은 무모한 시도로 필연적으로 파멸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미 세상은 그런 면에서의 멸망이 사법적으로 확정되어 있습니다. 창조의 법에 의한 멸망이 집행되지 않아도 스스로 자멸할 지경이라고 한탄하는 정도이죠.
인간은 스스로도 죽는다고 확신합니다. 허무를 근간으로 하는 불안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죠. 광기를 보이는 것도 당연합니다.
욕이나 어떤 쇼핑, 게임, 시위, 테러, 전쟁, 쾌락에의 몰입, 어떤 광란의 행동 등등은 불안 장애에서 오는 것일 수 있습니다. 필연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의 의식이 그렇게 만들어져 있거든요. 법칙을 거스르면 안정될 수 없게요.
법칙에 순응하는 것이 쉽고 편하고 평화롭고 행복하고 풍요로운데 왜 그토록 거부하는 것일까요?
선악은 스스로 규정하는 것이라고 하고 법을 만들어 세상을 망치는 것일까요? 완전한 도덕표준과 창조의 법이 있는데요.
이를 무시한 인간과 나라들의 주제넘은 극에 달해 있습니다.
병적인 불안에서 죽을 때까지 시달릴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