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 맞추느냐

by 법칙전달자

어디에 맞추느냐


인간은 환경을 자신에 맞게 조정을 해야 합니다. 적어도 지금과 상당기간의 미래까지는 그러해야 합니다.


기온이 매우 낮거나 높으면 난방이나 냉방을 하여 신체가 감당할 수 있는 조건에 맞게 조정을 해야 합니다.


그것에 맞게 신체의 조건을 조정할 수는 없죠.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있는 날이 올지 모릅니다. 기상조건이나 중력 조건이 지금과 달라도 지금처럼 우주복을 입지 않고도 생존을 유지할 수 있는 날이요. 지금과 같은 음식을 먹지 않고도 그러므로 배설도 하지 않고 살 수 있게 될 수도 있겠죠. 지금까지 인간은 상상하는 것을 이루어왔으니까요.


그런데 물리적인 것이 아니라면 즉 심리적인 것이라면 그런 조건들을 자신에게 맞추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타인의 조건에 맞추어 변화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심리적인 변신 속사람의 변신은 사람에 따라 자유로운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나는 아무에게도 매이지 않은 자유인이지만, 되도록이면 많은 사람을 얻으려고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습니다. 내가 유대인을 얻으려고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처럼 되었고, 내가 율법 아래 있지 않지만 율법 아래 있는 사람을 얻으려고 율법 아래 있는 사람에게는 율법 아래 있는 사람처럼 되었습니다. 내가 하느님과 관련해 율법 없는 사람이 아니며 그리스도와 관련해 법 아래 있지만, 율법 없는 사람을 얻으려고 율법 없는 사람에게는 율법 없는 사람처럼 되었습니다. 그리고 약한 사람을 얻으려고 약한 사람에게는 약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려고 모든 부류의 사람에게 모든 것이 되었습니다.(고전 9:19~22)


인간이 손오공에 나오는 수준으로 개나 나비로 변신하는 정도는 가능하지 않겠지만 동료인간이 동질감을 느낄 수 있게 속사람을 그들의 모습이 되게 변신할 수는 있습니다.


그런 변신의 예는 인간이 개의 세계에 동화되기 위해 개들의 세계에 들어가 네 발로 걷고 입으로 직접 음식을 먹고 하는 불편보다 더 큰 불편을 겪은 경우가 바로 예수입니다. 하늘에서 탁월한 영적 존재로 있다가 육체를 가진 인간으로서의 불편한 삶을 어떤 이유에서 감수한 것이죠.


사람들의 의식은 대개 자기본위적입니다. “나하고는 안 맞아!” 하면서 배척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죠. 끼리끼리 어울리는 것입니다. 또 그런 사람들과는 사귀지 말라고 하기도 하죠.


공식적으로 불가촉천민의 딱지를 붙이기도 합니다.


물론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역겹고 천박한 인격적 면면이 있을 수 있죠. 그리스인들도 비그리스인들을 야만인이라고 하기도 하였으니까요.


그들처럼 되어 그들과 교류하려고 그들의 모습이 되어 그들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것은 생각하기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사람은 아마도 서두에 언급한 신체적으로 어떤 조건에서도 살 수 있는 그런 능력을 지닌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예쁨의 착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