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이 아니다

by 법칙전달자

욕심이 아니다


자기 분수에 맞지 않게 많거나 높은 것을 추구하는 것을 욕심이라 하기도 합니다. 주로 재물이나 지위, 명예 같은 것을 주제넘게 바라는 것을 의미하죠.


자신과 수준에 있어서 큰 격차가 나는 배우자를 얻기 위해 고액의 성형을 하는 경우도 그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 본연의 분수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인간이 그것을 올바로 알 수 있습니까? 인간은 애초에 잘못된 관념을 전제로 분수라는 것을 생각합니다.


인간의 능력이라는 것은 고정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은 높은 현실적 한계라는 장벽이 있지만요. 주어진 신체적인 것을 비롯하여 여러 조건이라는 것도 그렇습니다.


어떤 면에서의 인간끼리의 우열의 차이는 도토리키재기입니다.


크게 비약하여, 말하고자 하는 것은 1,000년을 살겠다고 하는 것은 수명에 대한 터무니없는 욕심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고작 1,000년입니까? 죽지 말아야죠. 아프지도 않고 늙지도 말아야죠.


그런 것은 과욕을 부리는 것이 아니라 겸허하게 섭리에 따르는 것입니다. 그런 상태를 당연하게 여기는 것은 겸손하기에 갖는 합리적인 신념에 의한 것입니다.


인간들은 오히려 주제넘게 현 생명이 인생의 전부라고 우기고 있는 것이지요.


인간 생명이 뭔지도 모르는 무지에 의해서요.


살만큼 살았으면 죽어야지 하는 태도는 오히려 무지에 의한 고집인 것입니다. 자연의 섭리를 겸허하면서도 비장하게 수용하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 생명이 무엇인지 삶이 무엇인지를 자신이 규정합니까? 인간은 그럴 자격과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굳이 그런 비정상적인 상황을 받아들이겠다고 고집하면 자유의 법칙에 따라 그렇게 됩니다.


인간들은 인간의 생명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관한 진리를 배우기를 거부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경험에 근거하여 나름의 판단을 내리죠.


인간들도 나름으로 겸허와 겸손을 강조하는 경우가 있지만 무지에 근거한 편견에 의한 경우가 있습니다.


게다가 인간은 현실에 대한 무지도 심각합니다. 현실이란 현재의 실제의 사실을 의미하지 인간의 경험이나 다수의 생각이나 주된 풍조하고는 전혀 다릅니다. 80억이 모두 동일하게 생각한다 해도 그것은 전혀 비현실적인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자신이 경험하고 있는 것은 현실을 무시해서 현실에서 도태된 그런 현상일 수 있는 것이죠.


인간이 알 수 없는 것에 대해 나름의 고집으로 주장하는 모든 것은 비현실적인 것입니다.


생명과 행복은 겸허한 사람만이 누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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