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정할 수 없다
인간은 새로운 것들을 계속 발견하고 계속 경험하지만 이미 있던 것들입니다. 앞으로도 그러할 것입니다.
전 우주, 모든 만물이 이미 주어져 있죠. 물질적인 것들만 아니라 그 현상, 법칙, 원리, 성질들이 그러합니다.
있던 것이 다시 있게 되고, 했던 것을 다시 하게 되니, 해 아래는 새것이 아무것도 없다.
“이것을 보아라. 새것이다” 하고 말할 만한 것이 있는가? 그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했으니, 우리 시대보다 앞서 이미 존재하던 것이다.(전도 1:9,10)
인간이 아무리 놀라운 문명을 이룩한다 해도 이점에는 변화가 없습니다. 이미 있는 것을 활용하여 그렇게 하는 것이죠.
시초에 만들어진 이미 있는 것들이 그만큼 경이롭다는 것을 의미하죠.
완전 무에서 우연히, 맹목적으로 시간, 공간, 물질, 에너지가 갑자기 폭발적으로 생겨났다고 하는 생각과 어떤 목적을 가지고 존재하였다는 생각 중 어느 것이 합리적입니까?
인류원리, 인간중심원리라는 것도 무신적 과학자가 생각해 낸 것이지만 그것이 원래 있는 것이라면 발견한 것이라고 할 수 있죠.
모든 것은 하느님을 위해 존재하고 그분을 통해 존재합니다.(히브리 2:10)
만물은 인간을 위해 존재하지만 하느님을 위해 존재하기도 하죠.
인간은 자신의 경험한 것을 근거로 자신의 짧은 생각을 바탕으로 결론을 내려고 하지만 그 경험이나 생각은 제각각입니다. 인간 이외의 지성적인 존재인 우주인의 존재여부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어떤 인간이 미래에 천사를 만나게 되면 그 이전까지 지니고 있던 천사 같은 것은 없다는 생각은 바뀔 것입니다. 그러나 천사는 원래부터 있었던 것이죠.
경험이나 사견들은 제각기 다르고 또 가변적입니다. 그러나 어찌 그러한 것에 의존하여 삶을 삽니까?
어리석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하지만 악한 것이기도 하여 동정적이지만은 않습니다.
그런 것을 바탕으로 얻어진 생각으로 정치도 하고 경제도 하는데 끊임없이 전쟁을 일으키고
빈부의 격차는 극심하죠. 나라들이 공식적으로 그러하니 개인들의 삶은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악인에게는 평화도 자유도 없습니다. 불쌍하게 여길 여지도 전혀 없습니다. 그저 없어지기를 갈망하게 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