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질은 어디에

by 법칙전달자

성질은 어디에


산소는 산소로서의 존재의 특징이 있습니다. 그 물리량이 있죠. 그 구조도 있고요. 그 성질도 있는데 그것으로 호흡을 하고 불을 내고 신체에서의 필수작용을 하죠.


그런데 그런 것이 어디에 있는 것인가 하는 궁금증이 생깁니까? 그것은 규명될 수 있는 것이며 아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입니까? 실용성이 전혀 없는 공허한 사고의 유희에 불과한 것입니까?


존재의 위치에 대한 궁금증은 본능적인 것입니까? 하느님은 어디에 존재하는가와 같은 궁금증 같은 것이죠.

그리운 어떤 사람은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 하는 궁금함은 자연발생적인 것입니까?


무엇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 것은 경우에 따라 꼭 필요한 정보가 될 수 있습니다.


혹시 자신이 실제로 존재하고 있는 곳은 어디인가? 하는 의문이 든 적도 있습니까?


“무엇이 어디에”는 의미 있는 의문일 경우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실용성이 가진 경우도 많고요. 필요한 것의 위치를 아는 것이요.


어디에 혹은 어디에, 어떻게 있어야 하는 지를 생각해 보기도 합니까?


비유 혹은 상징적인 위치라는 것이 있습니까? 제 위치라는 있고 제 위치에 있는지 반드시 확인해 보아야 하는 것들이 있습니까?


짠맛이라는 것이 소금의 내부에 있지 않는다면요? 밝음이라는 성질이 빛에 없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까?

성질이 실체에서 분리되어 나갈 수 있습니까? 검은색이 머리카락에서 나가는 것처럼요.


이런 점들에 대해 인간이 철학적으로 사유해서 얻어낸 것이 있습니까?


이 글은 낙서성이어서 어떤 분명한 메시지를 꼭 전해야 한다는 의도성은 없습니다. 꼭 특정 결론을 내려야겠다는 강한 의도도 없고요.


어떤 성질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하는 것은 어떤 영역에서 인간이 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에게 있어야 성질들이 있는지 어디에 얼마나 어떻게 있는지 알 필요는 있습니다.


그래야 인간으로서 본연을 역할을 하여 그 존재가 지속될 수 있으며 누군가가 몹시 그리워하면서 지금 어디에 있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될 수 있으니까요.


지금 세상은 많은 사람들이 서로 차라리 그런 존재가 없어졌으면 하고 바라는 존재들이니까요. 실제로 많은 돈을 들여서 그렇게 하고 있죠.


그립기는커녕인 존재들입니다. 그리워할 만한 성질들이 그 존재들에게 들어 있지 않은 것이죠.


인간들에게 그런 판단을 받는 것은 그나마 자의적인 것이어서 덜 중요할 수 있지만 절대자에게 그렇게 평가되는 것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분이 필수적으로 보는 성질이 자신에게 있는지 살펴보아야 하죠.


물론 그전에 그 성질이 무엇이지 아는 것이 선행되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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