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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칙전달자 Aug 06. 2022

개인은 없다

개인은 없다      


개성적이고 독창적이고 다양한 개체들은 세상의 아름다움과 풍요로움의 진수를 이룹니다. 

세상에서 모든 면에서 전적으로 동일한 존재는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개성, 독창성은 객관적 정당성이 있습니다. 아니 절대적 정당성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다양성 뿐만 아니라 변화성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시간 전과 정확하게 동일한 존재는 아무것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변화하는 것 역시 절대적 정당성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진화에 의해 변화하고 다양한 존재들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창조의 원초적 섭리에 의해 그렇게 되는 것이죠. 어떤 사람들은 그 창조의 섭리에 의한 것을 진화에 의해서라는 주장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은 이처럼 다양성 변화성 등의 창조의 섭리를 인식하고 감탄할 수 있는 인식력이 있습니다. 물론 이 다양성과 변화성은 유일성이나 불변성이라는 또 다른 기본 섭리와 전혀 상충되지 않습니다. 만물의 이와 같은 운영섭리를 이해하는 인간의 의식이란 참 신비스러운 것입니다. 그것은 참으로 신성한 것입니다.    

  

눈 하나만 보더라도 눈이 가로로 찢어져 있고 눈썹 밑에 있다는 것은 획일성과 불변성의 지배를 받습니다. 누군가가 눈썹과 눈의 위치를 바꾸는 성형수술을 하고서 혹은 코와 입의 위치를 바꾸는 성형수술을 하고서 나의 개성, 나의 독창성, 나의 창의성이 어때 하고 자랑하려 한다면 어떻게 느끼겠습니까? 그런 수술 자체가 없을 뿐 아니라 그것은 결코 아름다움이 되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신이 삼위일체라든지 생물이 진화되었다든지 민주주의를 해야된다는 따위의 생각은 사상의 개성이 전혀 아닙니다. “사람들은 내 생각은 이래” 하면서 그것이 다양한 생각 중 선택할 수 있는 것 중에 하나라는 식으로 혹은 당연히 그것을 선택해야 한다는 식으로 피력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실 그것은 머리를 잘라 뒤집어 목에 붙여 놓고서 어때 하고 물어보는 것이나 너도 이렇게 해야 해 하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죠. 기형적인 것입니다. 죽은 사람의 시체를 가지고서나 그런 식의 짓을 할 수 있습니다. 시체들에게나 할 수 있는 선택입니다. 그런 면에서 세상은 기형적인 존재 즉 괴물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서로 괴물이다 보니 서로 개성적이라고 인정할 수 있지요. 각기 다른 형태를 가진 기형아들인 것이죠. 그래도 모양이 비슷한 것끼리 어울려 다른 형태의 괴물들과 대립하고 있지요.  

    

현재의 인간들은 신체 부위가 제 위치에 있어도 손 볼 데가 많습니다. 선뜻 개성이라고 하기에는 교정되어야 할 데가 많은 것이죠. 신체의 각 기관들도 결국은 문제가 생기고 그 기능이 정지되고 말죠.     

 

선택할 수 있는 무수한 다양성이 있는데도 선택해서는 안 되는 것들을 선택한 결과입니다. 하나가 되어야 할 부면에 있어서 다른 것이 되는 것이죠. 그 하나와 다른 모든 개별적인 것을 부인하고 없애야만 생존할 수 있습니다. 하나에 합일시키지 않는 모든 개성적인 것 즉 개인들은 없어질 것입니다. 잘못된 다양함을 없애고 스스로 변화하여 하나에 귀속하는 것이 아름다운 개성으로, 늘 변화하여 질이 높아지는 개성으로 축복받는 존재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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