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행복
인간의 행복의 원천은 무수합니다. 매일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죠. 물론 행복도 복합개념이라 매우 다양한 측면들이 있죠.
그 원천이라는 측면이 있다면 그중 하나는 사람입니다. 앞으로 존재하게 될 사람의 수는 물론 셀 수 없습니다. 조나 그 이상의 단위로, 개척된 많은 행성들에서 삶을 누리고 있겠죠. 기정사실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인적 원천 그 하나만으로도 무한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나마 그 양적인 묘사는 이와 같이 하기라도 하지만 질적인 묘사는 불가합니다. 어휘도 없거니와 만들어서 묘사한다 해도 지금의 원시적이고 야만적인 인간들이 알아들을 수도 없기 때문이죠. 관련 감성의 개발 수준도 열악하기 짝이 없죠.
가장 초보적인 조건도 갖추어져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원칙적인 존중심, 존경심이라는 것입니다. 원칙적이라는 것은 단지 사람이라는 조건 때문에 존중하는 것을 의미하죠. 그것도 마음의 깊고 강한 인식에서 우러나와서요.
그렇게 하기가 쉬운 이유는 그 자체가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든 사람이 있기만 하면 행복할 수 있는 것이죠.
경멸의 감정은 완전히 그 반대입니다. 그 자체가 고통의 일종입니다. 적의나 증오는 더욱 그렇고요.
이러한 존중심과 존경심은 인간에게서 행복을 얻는 시작점입니다.
오늘날 인간들은 단지 경멸, 증오정도가 아니라 많은 돈을 들이고 철저히 계획하여 서로를 죽이는데, 공식적으로 그렇게 하고 있고 나라에 속한 모든 인간들은 그러한 행위의 연루자들이므로 본질적으로 다를 바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죽이지는 않더라도 정치적으로 사장시키려고 애를 쓰는 모습은 쉽게 볼 수 있죠.
인간의 인간에 대한 의식은 결코 존중이 아닙니다.
물론 존중심 있는 태도로 친절하게 서로를 대하는 것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마땅하지만 순수한 원칙에 입각한 본래적인 것이 아니라면 그는 동료인간에 대한 존중심을 특성으로 가진 존재는 아닌 것입니다.
그의 돈이나 정치, 오락 등등에 대한 가치관을 보면 그 점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인간에 대한 존중이 특징으로 되어 있지 않은 인간은 결국 존중받지 못합니다. 평생 사람으로 인한 전정한 행복이라는 것을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채로 삶을 마칠 것입니다.
우주에 존재하게 될 모든 사람들은 동료인간에 대한 존중을 기본 특성으로 갖춘 사람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