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날개

by 법칙전달자

새벽의 날개


새벽의 날개로 멀리 날아가 가장 먼 바다에 거할지라도,(시 139:9)


시인들만 할 수 있는 표현입니다. 3,000년 전의 한 시인이 한 표현이죠.


이 일련의 시구들의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오 하느님, 나를 살피시고 내 마음을 알아주십시오. 나를 조사하셔서 내 근심을 알아주십시오.

내 속에 해로운 길이 있는지 보셔서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해 주십시오.(시 139:23,24)


다른 어떤 시인들도 내릴 수 없는 결론입니다.


너희가 재앙의 날은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면서 폭정은 불러들이고 있느냐?

그들은 상아 침대에 눕고 침상에 드러누워 양 떼의 숫양과 살진 송아지를 잡아먹는다.

수금 소리에 맞춰 노래를 지어 부르며 다윗이나 된 것처럼 악기를 만든다.(아모스 6:3~5)


다윗은 시인이면서 연주가이고 악기제조가이기도 했습니다. 문학이나 음악, 예술의 영역이라고 해서 그것이 다른 상황과 독립적일 수 없습니다. 인간이 멸성이라면 그러한 것이 진정한 가치를 발할 수 없습니다. 예술 자체에 인간 생명의 영원함의 당위성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인간에게 가장 큰 재앙은 죽음이죠. 그런데 인간들은 자신의 찰나의 부귀영화를 위해 많은 동료인간들을 압제하에 두었습니다.


그들은 쾌적하고 안락한 환경가운데 기름진 음식과 음주가무를 마음껏 즐기는 순간을 가지겠지만, 예술을 최고급으로 누리는 시간들이 있겠지만 결국 소멸되어 가루처럼 될 것입니다.


다윗은 왕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다른 세력 있는 자들과 달리 피조물로서의 정상적인 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창조주에게 큰 사랑을 받는 인물이 될 수 있었죠. 음악도 시도 창조의식을 가장 두드러지게 반영하였습니다. 창조의식에는 창조주와의 개인적인 관계도 포함되죠.

그런 면에서 다른 인간의 본이 되므로 다윗의 시들은 많은 비중으로 말씀에 포함되게 되었습니다.


다윗과는 전혀 다른 세력 있는 자들의 행태에 대해 다윗의 이름을 사용하여 조소를 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죽은 지 수백 년이 지난 후에도요.


인간은 심지어 화장실 가는 것이 아무리 급해도 누가 매우 아프게 꼬집고 있는데 그 손을 치우지 않고 갈 수는 없습니다.


멸성은 인간이 치워야할 가장 우선적인 순위에 있습니다. 인간은 그런 조건을 갖추는 것을 최우선에 두어야 하고 어떤 활동에도 그 점이 일순위로 반영되어야 합니다. 그 점을 배제하고 하는 무엇이든 의미가 없습니다.

시를 짓고 노래를 부르는 일뿐 아니라 그 어떤 일에 있어서도요.


새벽의 날개를 달고 마음껏 여행을 즐기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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