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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지는 않아도

by 법칙전달자

먹지는 않아도


논산훈련소 유치장에 잠깐 있었던 한 사람이 그 안에 있었을 때의 제일 큰 애로사항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소변을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감방 안에 변기 통이 하나 있는 데 사용할 때마다 '반성'이라고 구호를 외치고 "보고자 소변이 보고 싶습니다"라고 보고를 하고 허락을 받아야 그렇게 할 수 있는데 '안 돼'라고 하면 구타당하는 것을 무릅쓰고 변을 보아야 한답니다. 유대인을 수용소로 보내는 이송열차도 칸마다 남녀노소를 구별하지 않고 몰아놓고 변기통을 하나 둔답니다. 대소변을 한꺼번에 거기에 처리해야 하는 것이죠.


사람은 물을 마시면 한 달 정도 아무것도 먹고 마시지 않아도 적어도 3일은 생존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정상적으로 식사를 하는 사람이 하루라도 전혀 배설을 하지 않고 견딜 수 있을까요? 상상하기 힘들 것입니다. 먹지 못하는 것보다 배설 못하는 스트레스가 훨씬 큰 것이죠.


물질계는 정신계의 투영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간이 만든 물건을 보면 만들어 나오기 전에 보이지 않게 인간에 정신에 먼저 있었던 것이죠. 유심법칙이라고 합니다.


지식은 정신적 양식이라고 하죠. '영적'과 '정신적'은 동의어로 쓰이기도 하지만 이 글에서는 다른 의미로 사용합니다. 사람들은 학교 등에서 지식을 섭취하고 그것으로 삶을 산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철학적인 사상 혹은 종교적인 사상 같은 것은 영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책이나 강의를 통해 사람들이 섭취하죠. 어떤 면의 삶은 그것으로 산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하고 먹고 자고 하는 활동 그리고 문화활동들은 정신적인 양식에 의해, 종교나 정치적 활동은 영적 양식에 의해 그렇게 하는 것이라 할 수 있죠.


그런데 신체가 잘못된 음식을 먹으면 병에 걸리듯이 잘못된 영적 양식을 섭취하면 영적으로 병에 걸린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절대다수의 사람들은 영적으로 치명적인 병에 걸려 있거나 아예 죽은 상태이죠. 산상수훈의 첫마디는 "영적 필요를 느끼는 사람들은 행복하다"입니다. 필요는 살아 있는 사람이나 느끼는 것입니다. 예수는 의원으로 세상에 왔다고 했습니다. 그분은 사람들의 신체적인 병들도 물론 고쳤지만 영적인 병을 고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죠. 영적으로 재탄생하도록 돕는 것이었죠.


배설은 몸에 필요 없거나 해로운 것을 내보내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섭취하는 영적인 양식들은 사실 악한 영의 영감을 받은 것이기 때문에 비유적으로 독성물질이 섞여 있기 마련입니다. 배설을 해야 하는 것이죠. 즉 버려야 하는 것이죠. 학자들이 공식적으로 독성이데올로기라고 하기도 하죠. 그것을 정신에 그대로 지니고 있으면 병들게 되고 결국 죽게 되죠. 영적인 행복을 정상적으로 누리는 사람은 거의 없어 보이는 세상입니다.


사람들이 어렸을 때부터 장기간 반복적으로 섭취해 온 것들을 과연 배설할 수 있을까요? 대부분 죽으면 죽었지 버리지 못하겠다고 하는 의식 혹은 무의식적인 태도를 지니고 있습니다. 실제로 그것으로 죽어왔고 또 죽을 것입니다. 배설하려면 즉 버리려면 그것이 옳지 못하고 해롭다는 것을 알아야죠.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 배설은 필수적이라는 것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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