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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칙전달자 May 29. 2023

편견일 수 있지만

편견일 수 있지만 


특히 선진국에서는 애완동물을 키우는 가정의 비율이 크죠. 사람에 대해서보다 시간, 정성, 비용을 더 들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애완견은 그가 자신을 돌보아 주는 사람인 이상 그가 어떤 사람이냐 하는 것은 전혀 개의치 않죠. 그리고 사람이 정을 붙이고 깊은 애착을 둘 정도로 그렇게 귀엽고 친밀하게 애교를 부리죠. 애완견을 그 사잔과 함께 벽에 붙여 놓고 찾아주면 50만 원의 사례금을 준다는 홍보물도 보았습니다. 어떤 면에서 사람보다 나은 점이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죠. 


이웃을 방문하여 애완견이 있음을 확인하고 저 개는 동물인데도 한 가족처럼 친하게 지내지 않습니까? 우리는 동료인간이고 또 이웃인데 잠깐 편하게 대화 좀 나누면 안 될까요? 하고 접근하면  대부분 거절됩니다. 

아무튼 동물에게 경우에 따라 많은 비용을 들이면서 지극정성을 나타내는 것은 오늘날과 같은 세태에서 이해는 할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나 개인주의 그리고 사유재산제도가 확립된 지역에서 비난받을 만한 일은 아닐 것입니다. 그리고 잠깐이기는 하지만 한번뿐인 인생인 것이죠. 미래가 없는 삶이지만 그건 어차피 그런 것이니까 두려워하거나 염려할 필요가 없는 것이죠. 현재 자신이 마음 편하게 함께 삶을 나눌 수 있는 대상이 반려동물이라면 그렇게 하는 것을 누가 정당하게 비난할 수 있겠습니까? 


그게 정말로 공익광고인지는 모르지만 한 달에 만원 혹은 몇 만 원이면 상당수의 아이들이 깨끗한 물을 먹게 할 수 있고 영양실조나 질병에서 벗어나게 해 줄 수 있으니 그런 지원을 해달라는 광고들이 있습니다. 신빙성 있는 국제기구에서 주관하는 것이며 유명한 배우가 모델로 나오기도 하죠. 


저도 어렸을 때는 동물학자가 되는 것이 꿈일 정도로 동물들을 좋아했습니다. 개미도 다람쥐도 키운 적이 있죠. 지금도 자연 상태에서 동물과 친밀하게 지내는 것을 상상해 봅니다. 


그런데 솔직히 집에서 애완견을 키우는 것에 대해서는 편견일 수 있지만 지금 시대가 멸망직전의 긴박감을 느끼면서 살아야 하는 시국이고 주변에 경제적 문제로 어려움을 겼고 있는 동료들도 많은데 애완견에 상당한 비용과 시간을 투자하는 것은 삶에 우선순위를 잘 못 두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일부 지인들이 애완동물을 키우는 경우를 보면 편견일 수 있지만 의식 수준이 최고의 경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죠. 


지역에 따른 빈부의 차이는 사실 어떤 이유로 인위적으로 그렇게 조장된 것이라고 합니다. 지구 전체의 자산을 생각하면 수억 명이 식수와 식품 부족에 시달릴 이유가 전혀 없죠. 낭비되고 버려지는 식량도 어마어마하죠. 


가난이 세상 배후의 통제자들이 고의로 그렇게 한 것이라면 한 번에 몇만 원씩 기부하라는 그런 광고는 뻔뻔할 정도의 이율배반인 것입니다. 동정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다른 이유에서 그런 구호 활동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죠. 어쨌든 동료인간이 굶어 죽어간다 해도 전혀 의식지 않고 동물에게 많은 돈을 들인다 해도 비난의 여지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의식 있는 사람이라면, 즉 어차피 잠깐 살다 영원히 없어질 인생이고 인간 중에는 정을 줄 만큼 믿을 만한 대상이 없으므로 죽을 때까지 동물 하고라도 정을 나누며 의미 있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이해할 수는 있지만 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결코 지금처럼 애완동물을 키우지는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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