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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칙전달자 May 01. 2021

결정적인 것과 임의적인 것의 경계

결정적인 것과 임의적인 것의 경계 


한 달 후나 일 년 후의 지구의 위치는 결정되어 있습니다. 아직 인간은 이런 것들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은 없습니다. 만물에는 자연법칙에 의해 그 미래를 인간이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것들이 많습니다. 인간은 단지 관련된 법칙들을 발견하는 것뿐이죠. 그것을 통해 미래의 상태를 예측하려 합니다. 관련된 법칙을 정확히 모르는 경우에도 우주의 미래는 이러이러할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인간이 그것을 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전제가 물론 깔려있죠. 


한편 미시세계에 대해서는 불확정성원리가 적용된다고 합니다. 관찰에 의해 상태가 정해진다고 하는데 그래도 인간이 임의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물론 거시세계건 미시세계건 인간이 임의로 변화시키고 조정할 수 있는 범위가 있죠. 인간이 물리력을 사용하여 위치나 형태 등 많은 것들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세월이 지나면 과학기술의 발달로 행성의 궤도를 바꾸어 놓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인간이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요. 지금도 인간은 바다의 일부를 육지로 혹은 육지를 호수로 만들기도 하죠. 


현재의 인간은 광합성을 만들거나 쌀을 만들 수는 없습니다. 쌀은 원래 있는 것이고 품종개량은 할 수 있죠. 그리고 어디에 얼마나 심을 지 그 쌀로 밥을 지을 것인지 떡을 만들 것인지 막걸리를 만들 것인지를 임의로 할 수 있습니다. 즉 쌀은 결정적인 것이고 떡은 임의적인 것이죠. 


결정되어진 것과 임의적인 것의 경계는 분명해서 쌀이 인간이 그렇게 하지 않는데 저절로 떡이 되는 경우는 있을 수 없죠. 우리는 법칙이 그렇게 엄격하게 적용되는 그런 우주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입에 밥을 넣고 씹어서 삼키는 것은 자신이 해야 합니다. 그럴 의지가 없는데 어떤 힘에 의해 강제로 그렇게 되는 일은 결코 없는 우주에 우리는 살고 있죠. 그러나 씹어 목으로 넘기고 나서부터의 일은 인간의 임의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닙니다. 결정되어 있는 것에 의해 자동으로 처리가 되지요. 마지막 단계에서 인간이 임의로 할 수 있는 것은 소대변을 보는 시간이나 장소 정도입니다. 그리고 그 뒤처리이죠. 


물질세계에 있어서 결정적인 것과 임의적인 것의 경계는 분명합니다. 내일 아침에 태양이 떠오르는 것은 결정적이죠. 점심때 무엇을 먹을 것인지는 임의적인 것입니다. 이를 정확히 분별하는 것이 성공적인 삶을 사는데 꼭 필요하지요. 


이 글에서는 이 원칙을 영적 영역에 적용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원칙에 대한 분별력이 없어서 결정적인 성격의 것에 대해 변화시키려고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좌절만 가져올 뿐이지요. 지금 상태에서는 예를 들면 봄이 좋다고 해서 일 년  내내 기후가 봄이 되게 하려는 그런 무모한 시도를 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예전에는 다른 물질을 금으로 변화시키려는 시도를 한 적은 있죠. 팔을 휘저어 날아보려고 하는 시도도 어처구니가 없는 무모한 시도라는 것은 다 알고 있습니다. 


자연법칙 혹은 창조법칙은 인간에게 일방적이고 절대적인 구속력이 있어 인간이 행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법칙을 알고 이에 순응하는 것뿐이라는 것도 법칙입니다. 인간의식에 관한 중요한 법칙이죠. 


현재로서는 인간이 하기가 불가능한 것들이 많이 있죠. 그리고 성격상 영원히 불가능 한 것도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2+3=5 를 변화시키는 것도 성격상 불가능하지요. 물의 분자식이 H2O라는 것도 그러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지니고 있는 성질도 그러할 것입니다. 물이 우라늄과 똑 같은 성질을 갖는 것은 영원히 불가능하죠.  N극과 S극이 서로 물리치게 하는 것도 그럴 것이고요. 이런 절대적으로 안정성 있는 법칙 때문에 만물이 지금처럼 운영되는 것이죠. 


의식의 영역에서도 불가지 법칙에 따라 인간이 아는 것이 불가능한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냥 주어진 것들이죠. 인간은 중력이 어떤 성질을 지니고 있는 지 발견만 할 뿐이고 그것이 어떻게 그런 성질을 갖게 되었는지 알 수 는 없지요. 그런 것들은 조물주가 만물을 운영하기 위한 조건으로 일방적으로 부여한 것이죠. 


인간의 의식도 그러합니다. 의식기능 자체가 주어진 것인데 그것이 어떻게 그런 성질을 갖도록 만들어 진 것인지 인간은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입니다. 그냥 인간들은 주어진 방식대로 의식을 사용합니다. 그런데 인간의 의식은 자유여서 물질적인 것에 대해서도 소변을 금으로 만들려 하는 것과 같은 무모한 시도를 해 볼 수 있습니다. 


의식은 창조에 의해 그렇게 주어진 것인데 창조주란 과연 존재하는 것인가 하는 부당한 의심을 갖고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추리를 할 수 있습니다. 즉 의식을 그렇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이죠. 심지어 인간이 눈앞에 보이는 물건에 대서도 그것은 과연 실제로 존재하는 것인가 그저 나의 관념 즉 상상의 소산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따위로 의식을 사용합니다. 그래서 극단적으로는 유아독존론이라는 사상을 만들어 내기도 하지요. 


인간에게 부모란 그 인간이 존재하기 위해 주어진 조건이죠. 그런데 나의 부모란 과연 존재하는 것인가 하고 의심하고 그에 근거하여 추리하고 그런 것은 없다고 결론 내린다면 어떨까요? 그리고 그런 결론에 따라 실제로 산다면 어떨까요?


비약하자면 인간 철학의 본질이 그렇습니다. 그 철학에는 종교교리나 이념도 포함되어 있죠. 거대한 거짓입니다. 인간은 애초에 불가능하고 시도해서는 안 되는 그러한 시도를 해 온 것인데 이는 결정적인 것과 임의적인 것에 대한 분별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창조주의 존재나 창조, 선과 악의 기준, 인생의 목적 같은 것은 애초에 그렇게 주어진 것입니다. 인간에게 부모가 있는 것처럼 말이죠. 그것은 애초에 인간이 탐구해서 알아낼 수 있는 그런 성질의 것이 아닌 것이죠. 


지금도 인간은 그런 것들에 대한 답을 얻지 못하고 있죠. 수 천년동안 종교철학계에서 추구해왔지만요. 단지 불가지법칙이 밝혀져 그런 것에 대해 인간이 알 수 없다는 결론만 내려졌을 뿐입니다. 이 불가지 법칙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만 아직 철학적 추구를 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존주의에 따라 살아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본질적인 것은 알 수 없고 현재 살아있는 것은 확실하므로 더 이상 정신적 에너지를 본질을 추구하는데 사용하지 않고 현재의 삶을 얼마나 보람 있고 행복하게 사느냐 하는데 집중해야한다는 사상이죠. 그리고 돈이 있어야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오늘날 사람들은 돈 돈 돈 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인간이 인간을 통치하여 인간에게 진정한 복지를 영속적으로 이룰 수 있다는 생각도 원천적으로 틀린 생각이며 법칙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민주주의, 사회주의, 자본주의, 공산주의, 국가주의 따위의 정치 경제에 대한 이념 즉 철학은 원천적으로 거짓인 것입니다. 


전생이 있는지 내생이 있는지 천당지옥 따위 역시 인간이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런 점에 대해 나름의 답을 하고 있는 것이 종교이므로 종교 역시 원천적으로 거짓입니다. 정부와 종교는 이런 거짓들을 근거로 공식적으로 온갖 악행을 해왔습니다.  


이 모든 일들이 결정적인 것과 임의적인 것에 대한 분별력이 없는 것이 원인입니다. 즉 결정되어 있는 것은 거슬러 반대로 행하여 파멸에 이르고 임의적인 것에 대해서는 할 줄 모르기 때문에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는 것이죠. 


인간은 그 의식을 동료인간을 어떻게 사랑해야하는지, 주어진 물질들을 사용하여 삶을 질을 어떻게 높여 갈 것인지 등에 사용해야 하는 것이죠. 사실 지금 인간이 누리고 있는 좋은 것들은 그 의식을 후자의 방법으로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의식을 개인적으로 전자의 방법으로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행복한 사람들이죠. 


그렇지만 세상을 움직이는 주도적인 힘은 무분별적인 것에 의한 것입니다. 인간이 해서는 안 되고 알 수도 없고 할 수도 없는 그런 것을 하겠다고 하는 주제넘음에 의한 것이죠, 


인간은 창조주에 의해 자유를 부여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자유를 사용하는 대로의 엄한 결과가 주어집니다. 그렇게 결정된 것입니다. 그러나 자유의 사용은 또한 임의적입니다. 


인간은 피조물이며 이를 인식하고 창조주에 의해 결정된 것이 무엇인지 알고 그에 따라 사는 것인 진정한 행복을 영속적으로 누리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데는 돈 한 푼 들지 않고 육체적인 노동이 요구되지도 않습니다. 신분이 낮거나 가난하거나 건강상태가 좋지 않아도 그것이 그런 선택을 하는데 조금의 장애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의식을 즉 자유를 창조의 법을 거스르는 방법으로 확고하게 사용하는 자들이 필연적으로 맞게 되는 영원한 소멸은 전적으로 자신의 책임입니다. 그렇게 쉬운 것을 고의적이고 결정적으로 거부했기 때문이죠. 


인간의 생명 그리고 그 의식은 가장 소중한 선물입니다. 영원히 누리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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