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으로부터의 자유

by 법칙전달자

편견으로부터의 자유


편견이란 원칙적이고 사실적인 정당성 없이 평가하거나 호불호를 나타내는 것으로 여기서는 감정까지도 포함하는 것으로 합니다.


거짓분할 책략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사실 분열되어 있는 것은 본질상 다 거짓인데 분파 중에 하나를 선호하게 하여 그런 의식을 갖지 못하게 하는 것이죠. 진리의 영역인 학문적으로는 분열되어 있지 않고 세계가 공통적으로 배우는 것이 많죠. 구구단은 어느 지역이나 같은 것이죠.


세계는 종교나 정치적으로는 극심하게 분열되어 있죠. 하나의 국가 내부도 그러하죠. 진리에 근거한 올바른 의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 모든 파당으로부터 온전한 중립을 지켜야 합니다. 어느 파당을 지지하거나 반대해서는 안 되는 것이죠. 진리의 추종자들에 대한 성서에 규정된 원칙이죠. 이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그런 원칙대로 살고자 하죠.


그런데 실제적으로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선호하는 당파나 인물이 있을 수 있어 선거에서 이기면 은근히 좋아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세속적으로 속해 있는 국가의 스포츠팀이 이기면 은근히 기분이 좋고 지면 씁쓸한 감정이 생긴다면 그는 더 발전할 필요가 있는 의식 상태인 것이죠.,


축구나 바둑의 큰 대회에서 경기를 할 때 사람들은 순수하게 새로운 수를 배우거나 예술적인 발기술 같은 것을 감상하려고 경기를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속해 있는 국적의 선수 혹은 팀이 이기느냐 지느냐의 관심으로 보죠. 깊은 수양이 된 사람이라도 그런 관심으로 보고 지면 다소간이라도 씁쓰레한 감정을 갖게 된다면 그의 영혼은 온전히 중립적인 것은 아닙니다.


아프리카의 한 부족은 5년간 돼지를 키우고 일주일간 그 돼지를 잡아 잔치를 한다는 것입니다. 그때를 손꼽아 기다리며 산다는 것이죠. 4년마다 한 번씩 열리는 월드컵 같은 것도 축제의 의미도 있어 그때 느끼는 그런 흥분이 삶의 큰 의미가 된다고 하는 데 그것은 일찍부터 그렇게 세뇌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사는 의미에는 그런 편견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 있는데 그런데 이는 반드시 멸성에서 벗어나기 위해 버려야 할 것입니다. 어떤 병적인 것이라는 것이죠.


사랑하는 지인들끼리 축구 경기를 하고 서로 개운할 정도로 땀을 흘리고 회식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와중에 그 경기에서 지고 이기는 것이 무슨 큰 기쁨과 슬픔이 되겠습니까? 모처럼 그리운 사람들끼리 모여 대면해서 유익한 교제를 가졌다는 것이 큰 기쁨인 것이죠. 정상적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경기와 관련하여 갖는 의식 상태인 것이죠.


사람들은 승부와 관련하여 병적인 의식 상태를 가지고 있어 자신이 선호하는 정치인이 선거에서 지면 밥맛이 떨어진다고 하는 것이고 어떤 선수의 실수로 그 팀이 경기에서 지면 찾아가 죽이기까지 하는 것이죠.


이런 편견을 갖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한 사람들은 천만 정도 되지만 실제로 모든 종류의 편견에서 온전히 자유롭게 된 사람들은 100만이나 될까요? 자신의 의식 상태가 결심한다고 해서 바로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죠. 상당기간 훈련이 필요한 것이고 그리고 이기는 기쁨을 함께 즐기는 그런 문화가 너무 깊게 배어 있어 왜 그런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하는지 이유를 알기도 힘들다고 하는 것이죠. 한국 같은 경우 자국 팀이 월드컵에서 우승을 한다면 그 때 느끼는 그 강하고 짜릿한 쾌감 그걸 어떻게 부인하라고 하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병적인 것입니다.


이래저래 사람들은 편견에서 진정한 자유를 누린다는 것은 정말로 불가능하겠지만 그러나 그러한 자유는 형언할 수 없는 그런 행복을 누리는데 필수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생각하기에 따라 그런 부질없는 감정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은 쉬운 일일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상당수의 사람들은 자국의 월드컵 경기 같은 것이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무관심하거든요.


거짓 분할 책략에 걸려 편견의 종이 되는 사람의 결말은 비참한 것이기에 이처럼 다루어 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덮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