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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칙전달자 Jul 20. 2023

관심은 부담된다

관심은 부담된다


가족이나 절친이 관심을 나타내는 것은 당연하게 여길 수 있죠. 아니 무관심하면 서운하겠죠.


그런데 낯 모르는 사람이 관심을 보이는 경우는 일단 경계하게 되죠. 결국 비용이나 시간을 지출해야 하는 그런 것일 수 있죠. 아무튼 모종의 행동을 요구하는 것이죠. 개인적인 호의를 얻기 위한 경우도 있고 스토커적인 것이 있을 수 있습니다. 대개 이기적인 관심은 배타적으로 표현됩니다. 특정대상에게 유별나게 그런 것이죠, 특별한 목적이 있는 순수하지 못한 경우가 많죠. 지인이 갑자기 관심을 보이는 경우도 그렇습니다. 관심은 직접적인 접근도 있지만 요즘은 sns를 통한 것도 많죠.


모든 개인적인 접근이 개인적인 관심표명은 아닙니다. 선생님 질문 있어요 하는 접근이 그에 해당되겠죠. 업무적인 당연한 접근도 그렇고요.


원래 관심 자체는 긍정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관 혹은 관계란 대표적인 범주이죠. 그것이 무엇인지 설명할 수 없는 그런 것입니다. 마음이, 의식이 어떻게든 맺는 관련성이 관심이어서 의식의 원초적이고 초월적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특정적이고 배타적인 것은 동기가 순수하지 못하거나 목적이 이기적인 경우가 많아 어떤 관심은 아무래도 부담이 되는 것입니다. 조건이 좋거나 매력적인 대상에게 선택적으로 나타내는 편파적인 것이 있죠.


그런데 아가페 사랑이나 동정에 의한 원칙적인 관심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예수나 그의 제자들이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나타낸 관심이죠. 이는 인간 개개인에 대한 창조주의 관심의 표현인 것입니다. 예수는 30대 초반의 젊은 남자였고 여인들을 홀로 독대하여 장시간 대화를 나누어도 그런 면으로 전혀 의심을 받지 않았습니다.


순수하게 돕기 위해 동정적으로 나타내는 관심인 경우 그것이 더 필요한 사람에게 더 큰 관심을 나타내는 것은 편파적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오히려 공정한 것이죠.


누군가가 관심을 가지고 접근해 올 때 그것은 창조주의 당신 개인에 대한 관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일 수 있습니다. 오늘날도 예수나 그분의 제자들처럼 동료인간에 애해 그런 식의 원칙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죠. 그러므로 외부의 접근해 오는 관심에 대해 분별력을 잘 사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도 막연한 정도이지만 동료인간에 대한 포괄적인 관심으로 이런 글을 쓰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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