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알
자신이 정말 가치 있는 존재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하면서 그 점에 대해 불안함이나 낙담을 느껴 본 적이 있습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중하게 그렇게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지 않는 것이 현실이긴 합니다. 진화론 같은 사상의 영향으로 가치관이 굳어져 있기 때문이죠.
오늘날과 같이 가치관이 혼란스러운 시대가 아닌 경우에도 자신이 진정으로 어떤 존재인가 하는 면에서는 건전하고 올바르게 확립된 가치관이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세속적인 직업이나 신분 같은 것으로 정체성을 결정하려 했죠. 다른 사람을 판단할 때도 주로 그런 외적인 것으로 했을 것이며 그런 면으로 유리한 조건에 있는 사람들은 그것을 중요한 자중심의 근원으로 삼았을 것입니다.
외부로부터 그 사람이 매우 가치 있는 존재인 것처럼 부추김을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사람이 이용가치가 있다고 생각할 때 인간의 심리를 그렇게 이용하는 것이죠.
중국에 전쟁이 한창일 때 젊은 남자들은 대부분 전사하여 마을에 젊은 남자들이 씨가 마르던 때들이 있었죠. 그래서 남존여비 사상이 강한 중국에서도 "사람을 낳으려면 여자를 낳아라 그래야 죽지 않고 이웃마을에 시집가서 아이를 낳고 살지" 하는 가사의 노래가 있는 정도입니다.
그래도 징병을 하기 위해 이 마을 저 마을을 속속들이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있죠. 그들은 징병대상이 될만한 사람을 발견하면 "너 군대 안 가면 죽어!" 하는 식으로 위협하는 방법으로 결코 하지 않죠. 이름 있고 존경받는 장군이 그를 매우 존중해 주면서 격려하는 방법으로 하죠. "형 원수 갚아야지!" 그리고 한 가족과 같은 친근감을 나타내고 신뢰감을 줍니다 그로서는 그런 명망 있는 사람에게 그런 식의 대우를 받아 본 적이 없거든요. 매우 감격하죠. 기꺼이 한 목숨 바쳐 충성하고 싶을 것입니다. 자신을 그렇게 존귀한 존재로 여겨주다니요. 그 장군은 그런 식으로 모집된 군대에 대해서 형제들이여 하고 칭하면서 호소력 있게 통솔을 합니다. 전장에서 기꺼이 앞다투어 용감하게 목숨을 바쳐 싸우도록 하는 것이죠.
이런 식으로 주변 사람들에 의해 어떤 의도로 인위적으로 일깨워진 고양된 가치의식은 결코 참된 것이 아니지요.
세속적인 조건이 거의 모든 면에서 불리하여 어떤 면으로든 자중심을 갖기 힘든 사람이 정말 자신에게 어떤 조금의 잠재된 가치라도 있는 것인가를 생각해 보는 것이 가치 있는 그런 경우가 있을까요? 사실 세속적인 겉보기의 조건이 상대적으로 유리한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인간에게 있어서 진정한 가치는 아니지요.
관건은 창조주가 실존한다면 그분이 어떻게 보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겠죠.
모래알은 주변에 흔히 볼 수 있고 하찮은 것으로 여겨지죠. 몸에 묻으면 씻어버리는 것이죠. 그걸로 목걸이나 팔지 따위를 만드는 사람은 없습니다.
해변에서 모래를 한 움큼 쥐어 현미경으로 수백 배 확대해 본다고 하죠. 각각의 모래알이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보석으로 보일 것입니다. 모래알이라고 하는 것은 수많은 다양한 종류로 이루어져 있죠. 조개껍데기의 파면 같은 것들도 많이 섞여 있죠. 놀랄 정도로 다양한 아름다움을 띄고 있어 눈을 띄기 어려운 정도입니다. 하나하나가 매우 가치 있게 느껴지죠. 각각 독특한 미를 발산하고 있는 것입니다.
창조주가 정말로 존재한다면 개인의 잠재된 가치를 그분만큼 정확하게 보는 분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리고 성서 곳곳에 나는 정말 가치 있는 존재인가 하고 불안감을 느낄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구체적으로 내린 축복들을 보면 그분이 그러한 사람들 개개인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은 그러한 놀라운 잠재력의 근원인 창조주를 알고 그분과 합당한 관계를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다른 무엇을 통해서도 나는 무엇인가에 대해 의미 있는 답을 얻을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