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열은 분명하지만
열등감은 부정적인 감정 중의 하나로 간주됩니다. 열등의 존재는 공의나 의의 개념과 배치되는 것입니까? 열등이 하자 혹은 결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이상 그 개념을 정하기에 따라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단지 상대적인 열등은 열등이라 할 수 없을 수 있습니다. 모든 대상은 기준에 따라 단지 개성의 차이가 아닌 우열을 정하려면 정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사과와 배를 비교하여 우열을 정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음악과 미술의 우열을 정하려는 것처럼 불합리하며 개성의 차이라고 할 수 있는 그러한 것입니다. 사과끼리도 품종이 다르다면 그러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기준을 정하여 수치로 각 부면에 대한 점수를 매겨 서열을 정할 수도 있겠죠. 같은 품종이라면 틀림없이 우열을 따질 수 있을 것입니다. 두 개의 사과를 놓고 크기, 모양, 빛깔 특히 맛에 있어서 열이면 열 모두가 어느 한쪽이 더 났다고 할 수 있는 것이죠. 값이 열 배 비싸도 그 비싼 쪽을 택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죠.
그런데 열등한 것이 충분히 익지도 않고 벌레가 먹고 모양도 이지러진 즉 하지가 있는 것이라면 그에는 단지 열등 이외의 다른 부정적인 의미 혹은 평가가 더 해질 수 있습니다.
사람 사이에도 지, 덕, 체 등에 있어서 현저한 우열의 차이가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두 사람을 비교하면 한쪽이 비교가 안될 정도로 외모가 월등한 경우가 있을 수 있죠. 지적인 능력에 있어서도 그렇고 덕 즉 인격 혹은 인품에 있어서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열등한 것과 모자란 것 혹은 병적인 것과는 현저한 차이가 있습니다. 갓 태어난 아기는 신체적인 것을 제외하면 모든 면에서 수치로 0이므로 열등하다고 하면 극단적으로 열등한 것이죠. 성장하면서 교육을 받아 정서적 지적인 발전을 하게 되죠. 신체적으로도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신의 현재와 과거를 비교해도 모든 면으로 우열을 가릴 수 있습니다. 발전 중인 것은 과거보다 현재가 우월하죠. 나이가 들거나 병 때문에 퇴보하게 된 면은 과거가 우월한 것이죠.
외모에 있어서도 그렇습니다. 개성의 차이와 결함은 명백한 차이가 있죠. 누가 더 결함이 적으냐 하는 시각으로 보는 것은 서글프긴 하지만 현실에 있어서는 사실 비교라는 것은 그러한 성질을 지니고 있습니다.
오늘날은 우열의 평가가 매우 큰 가치가 있게 다루어지죠. 경쟁을 하고 시기나 질투가 있는 이유가 다 그 때문이죠. 우위를 점하려고 노력하고 경쟁하며 우월감은 기쁨이고 열등감은 고통이 되죠.
원천적으로 인간은 이 우열애 대해 잘못된 인식과 태도를 가지고 있죠.
그것이 결함의 심각성이 아니라 단지 기준에 따른 수치가 낮은 것이라면 이는 부정적인 의미를 지닌 열등이라 할 수 없습니다. 누구든 발전의 과도기에서 필연적으로 있게 되는 과정이니까요. 1,2,3,4,5...... 와 같이 발전하는 것이고 다른 누군가는 지금 8이고 미래의 자신은 12가 되는 시점이 있겠지만 지금 3이라는 것은 그런 것들과 비교해서 열등감을 가져야 하는 것이 결코 아닌 것이죠. 3이라는 것에 대한 감사함과 만족감을 갖는 것이 오히려 바람직한 것이죠. 0에서 시작하여 그렇게 된 것이니 자신의 발전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된다는 것을 의미하죠.
그런데 하자나 결함 혹은 병적인 문제점이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굳이 수치와 한다면 -3, -7과 같이 되겠죠. 이 경우는 부정적으로 평가하거나 경멸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도와주어야 할 경우가 되죠. 비교적으로 평가하여 서열을 정하는 그런 성격의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요즘 사람들이 지니치게 과도하게 우열적인 평가를 하며 그에 매몰된 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너무 쉽게 경멸적 평가를 하며 그것도 욕을 섞어서 그렇게 한다는 것이죠. 심히 주제넘기도 한 것입니다.
현대의 인간들은 누구나 모든 면에서 심하게 이지러져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외모 지상주의라고 하니 그 한 측면만 보더라도 성형과 화장을 아무리 해도 어떤 면에서의 하자들이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즉 0인 사람도 없는 것이죠. 마이너스 쪽으로 얼마나 적은가 하는 비교일 뿐입니다. 인상은 그 사람의 인격이나 가치관이 반영된 종합적인 것인데 그저 껍데기에 집중적으로 신경 쓰기 때문에 그에 반영되어 있는 인격의 민낯은 더 추하게 드러나는 것을 본인은 인식을 못하는 것이고 그리고 더 중요한 것으로는 사람들의 눈 자체가 잘못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피상적인 껍데기만 보고 평가하는 눈을 가지고 있는 것이죠. 특히 자신을 제대로 보는 눈이 없죠.
올바른 교육을 통해 정상적인 의식을 지닌 사람들만의 사회에서는 슬퍼해야 할 고통스러운 열등이란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의식에 관한 지식이 가장 중요합니다. 우열에 대한 올바른 의식도 매우 중요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