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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칙전달자 Jul 24. 2021

왜 모르는 것이 많은가?

왜 모르는 것이 많은가?      


인간은 지식이 0으로 태어나고 알아야 할 지식의 한계는 정해져 있지 않거나 알지 못한다는 면에 있어서 무한이라고 간주하면 인간의 여러 한계 때문에 지식의 극히 일부분만 수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물리적 측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글에서 밝히고자 하는 것은 그 성질상 인간이 알 수 있는 지식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입니다.      


암흑물질이나 암흑에너지가 있다는 것은 알지만 즉 강하게 추정되지만 그 본질은 언제나 알게 되는 것일까요? 그리고 우주의 전체구조, 다중우주가 있다면 그 전체를 포함한 전 구조를 정확히 알게 되는 날이 있을까요?      

관측의 한계 때문에 쿼크나 광자, 전자 등의 미립자의 본질을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고도 하는 데 그 본질이 끈이라는 주장을 확인하는 것도 그렇고 끈이라고 해도 그 본질에 대한 궁금증이 생길 텐데 언제나 그러한 의문에 대한 만족스러운 답을 얻게 될까요?      


그리고 그러한 것을 어느 정도나 알게 되는 것인지에 대한 원칙이 있을까요? 분명한 답을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인간이 피조물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데서 얻어집니다. 모든 물질적 영적 기능이 주어진 것이죠. 그리고 그 주어진 근원으로부터 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부모는 우리의 창조주가 아니지만 생명의 전달자이기 때문에 성장기에는 모든 면을 전적으로 부모에게 의존합니다. 신체적 정신적인 면으로 그러하죠. 양육되고 교육을 받는 것이죠. 그래서 성장한 후에도 두고두고 부모를 공경하려 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의식의 성장 과정에서 부모에게도 이처럼 종속적이라면 창조의 근원에 대해서는 얼마나 더 그러하겠습니까? 인간의 모든 의식기능을 전적으로 조성한 근원이라면 말이죠.   

   

비약해서 저는 그 근원에서 나온 메시지가 성서라고 확신하는데 명백한 증거를 바탕으로 해서입니다. 지금까지 소개한 사상들도 그에서 나온 것이죠. 이글과 관련한 창조주의 언명은 무엇일까요?      


전도서 9장 11절의 하반절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의식에 영원성을 두었다 하지만 인간이 하느님의 하시는 일의 처음과 끝을 결코 다 알지는 못한다.”    

  

이 말은 인간이 영원히 살면서 지식을 얻는다 하더라도 근본과 전체의 본질을 알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인간은 이면 말고도 무수한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은 삶의 목적인 행복을 손상시키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인간이 숨을 쉬어야 살고 먹어야 산다는 제한이 있지만 그것이 그렇게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숨을 쉬지 않거나 먹지 않아도 죽지요. 인간의 의식은 자유이므로 안 먹는 선택을 해서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에게 한글개역판에 의하면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두었기 때문에 이로 인해 죽지 않기 위해 발버둥을 쳐도 즉 모든 노력을 다 기울여도 죽게 되지요. 성서에서는 그 원인을 의도적으로 창조의 근원에 불순종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창조의 법 혹은 법칙에 대한 고의적이고 확고한 거스름이죠.    

  

예를 들면 지금도 인간사회 예들 들면 정치판에서 정객들의 언행을 보면 이 사회에서 사랑이 적용되는 것은 너무나 불가능해 보입니다. 서로에 대해 사랑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정신태도를 나타내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세상의 분열과 대립 자체가 사랑 없음의 명백한 증거이지요. 인간은 의도적으로 상대방을 사랑하지 않기로 작정한 것 같습니다. 물론 무지에 기인하긴 하지요. 그렇다 해도 고의로 그 지식을 거부한 범죄적 무지로 인한 것이기 때문에 책임을 면할 수 없습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것은 창조주에 의해 가장 중요한 법으로 제시된 것이죠.      


마음으로 사랑하는 데는 돈 한 푼 들지 않고 육체적 노고가 필요한 것도 아닌데 그러합니다. 인간들이 얼마나 해괴하고 기형적이고 역한 존재인지를 느끼게 될 뿐입니다. 스스로 멸성을 확고하게 지니고자 하는 것이죠. 세상 전반이 그러합니다. 1,000만 정도의 사람을 제외하고는요.    

  

다시 글의 주제로 돌아갑니다. 인간의 어떤 궁금증에 대한 답은 그 점과 관련된 창조주의 언명을 근거해서 알 수 있다는 것이죠. 궁극의 본질을 알 수 없다는 것이 그 답이라는 것입니다. 창조주가 인간에게 그런 한계를 둔 것이죠. 숨을 쉬어야 살 수 있다는 한계를 둔 것처럼 말지요.     

 

앞으로는 글들을 성서의 구절을 근거로 소개하겠습니다. 성서의 사상이라는 매거진에서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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