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예술이 결합하여 한 것
오늘날의 영상예술이라고 하는 것 가운데 액션이라고 하는 것은 단지 폭력을 미화하는 것일 뿐입니다. 더 자극적일수록 흥행에 성공한다고 하는 것이죠. sf영화라는 것도 과학과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강력한 폭력, 파괴, 살육을 다루고 있죠. 스릴 있고 짜릿하다고 하는 것이고 폭력욕구나 살인욕구의 대리만족을 얻는다고도 합니다. 그런 것을 게임으로 영화로 즉 손으로 눈으로 즐긴다는 것이죠. 피를 보는 흥분이 그렇게 통쾌하다고 하는 것인데 현대인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고대 로마의 경기장에서 검투사들의 피 흘리는 싸움은 대중들의 환호성을 울리는 구경거리였죠.
오늘날도 사실상 폭력을 호신술로, 스포츠로 미화하고 있죠 각종 투기 종목들이 그러합니다. ...도라고 하는 것이죠. 기술 심지어 예술이라고 하는 것이죠. 사람 패는 것을요.
심지어 인간에게 폭력 유전자가 있는 것이 아닌가 연구하는 정도이지요. 기관총을 난사하여 시원스럽게 대량살상하는 장면들에서 기립박수를 할 정도 열광하는 것이죠. 시원스럽게 박살 냈다고 하는 것이죠. 통쾌하다는 것이죠.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권선징악의 개념도 집어넣죠. 상대는 악당이라는 것이죠. 마음 편하게 즐기게요. 물론 선악의 기준을 일방적으로 정하는 것이죠.
현재 인간의 삶에서 적의 존재는 필연적이고 없으면 만들어야죠. 적이 없으면 삶이 재미없죠. 적대감이 있어야 투지가 생기고 의욕이 생긴다는 것이죠. 그렇지 않으면 따분하고 재미없다는 것이죠. 아이들은 일찍부터 세뇌되죠. 적대국가나 민족이 정해지는 것이고 그들을 가정하여 일찍부터 전쟁놀이를 하죠.
인간에게 폭력성은 심지어 본성적인 것이라고도 하죠. 전쟁이 일어나면 와! 싸우러가자! 라고도 하는 것이죠.
인간이 이렇게 된 것은 창조의 결함입니까? 인간이 창조된 것이라면 그 책임이 창조주에게도 있는 것입니까?
너는 완전함의 본보기로서, 지혜가 충만하고 아름다움이 완벽하였다. 너는 창조되던 날부터 네 길에서 흠이 없었는데, 마침내 네게서 불의가 드러났다. 네가 폭력으로 가득 찼고, 죄를 짓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내가 너를 더럽게 여겨 하느님의 산에서 쫓아낼 것이다. 덮는 그룹아, 너를 불타는 돌들 사이에서 멸할 것이다. (에스겔 28)
첫 인간처럼 모든 피조물은 창조될 때는 완전하었습니다. 그런데 모든 의식이 있는 피조물들에게 자유의지가 있습니다. 선악과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개념적으로 악이 있는 것이고 의식에서 무작위적으로 떠오를 수 있는 것이죠. 요즘은 양자역학이 있어 이런 점들을 설명하기 쉽습니다. 어떤 해괴한 생각도 떠 오를 수학적 확률이라는 것이 있으며 자유라는 것은 그런 성질에서 생기는 것이라고 합니다. 어떤 생각이 떠오르도록 미리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음에서요. 불확정성이란 정해지지 않음을 의하죠.
볼펜 끝에는 작은 볼이 있죠. 만물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고 했듯이 그 역시 원자로 이루어져 있고 전자는 원자의 필수요소이죠. 그런데 그 볼을 구성하고 있는 전자는 확률적으로 그 볼 안에 있을 확률이 가장 높지만 우주 어디에도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디에 있을 확률도 0은 아니라는 것이죠. 마찬가지로 인간의 의식에서도 어떤 생각도 순간적으로 떠오르다가 바로 소멸할 수 있는데 이는 소립자가 순간적으로 끊임없이 생성소멸하고 여기 있다 없어지고 갑자기 저기서 나타나는 양자요동을 일으키는 것과 같다는 것이죠. 사실 인간의 꿈도 납득할 수 없는 해괴한 장면들이 연출되죠.
그렇다면 인간은 그에 따라 어떤 행동도 할 수 있는 것이죠. 그러나 완전하게 창조되었다는 것은 그런 행동을 쉽게 할 정도로 불안정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담과 하와도 금지된 선악과에 대한 병적인 호기심이나 욕망 같은 것을 가지지 않았죠. 조심성 있는 뱀을 통해 사탄이 교묘하게 유혹을 하자 그제야 관심을 갖게 된 정도이죠.
앞으로 인간은 다시 완전성을 회복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의식에 어떤 생각도 떠오를 수 있겠죠. 그래서 그것을 스스로 통제하는 기준을 함께 주는 것입니다.
이미 불완전하게 된 가인에게도 ......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호의적으로 보셨으나, 카인과 그의 제물은 조금도 호의적으로 보지 않으셨다. 그래서 카인은 몹시 화가 났고 낙심했다. 여호와께서 카인에게 물으셨다. “너는 왜 그렇게 화가 났고 낙심하였느냐? 네가 돌이켜 선을 행하면 다시 호의를 얻지 않겠느냐? 그러나 네가 돌이켜 선을 행하지 않는다면, 죄가 문에서 도사리고 있으니 죄의 욕망이 너를 지배할 것이다. 네가 그것을 다스려야 하지 않겠느냐?”(창 4)
위와 같이 하셨는데 여호와는 이미 가인의 마음의 어떤 악한 상태를 보고 있었는데 그래서 미리 경고를 하고 다스리라고 하고 있죠.
인간은 스스로를 다스릴 절대적인 권한을 창조주로 부여받았으므로 창조주도 그것을 조정하거나 통제하지 않죠. 스스로 만든 법칙을 깨트리는 일이 결코 없는 것이죠. 그리고 그것을 다스릴 법, 도덕적인 표준, 선과 악의 기준을 두는 것이죠. 그것은 지금 인간들이 잘못 생각하듯이 인간이 임의로 정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절대 아닙니다. 선악과는 바로 그 점을 상징하는 것이죠. 선과 악이 무엇인지를 결정할 하느님의 권리를요. 하느님이 인간에게 자유를 존중해 주듯 인간도 창조주가 정한 도덕표준에 순종해야죠.
그리고 인과법칙 그 선택의 결과가 반드시 응하게 되는 법칙의 적용도 절대적이죠.
그리고 법의 적용은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욕을 하지 않는 것, 폭행하지 않는 것, 죽이지 않는 것은 결코 힘든 일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힘든 것이죠. 그리고 창조주만 그런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래로부터 지금까지 대부분의 인간 사회에서 그와 일치한 도덕적, 법적 규범을 두어왔죠. 성서에서 음행, 간음, 동성애, 수간 근친상간 등을 금한다면 대부분의 사회에서도 그러하였습니다. 한국에서도 남녀 7세 부동석이라고 하고 사회에 음풍이 불지 않게 엄히 단속했죠. 여성의 노출도요. 지금도 이슬람국가에서는 법으로 엄하게 규정하고 있다고 하는 것이죠. 성서에서 범죄로 규정하는 모든 행위에 대해서 오늘날도 거의 모든 나라에서 법적으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창조주가 부당하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오히려 오늘날 법은 창조주의 그것보다 훨씬 많고 복잡하죠. 창조주가 쓸데없이 인간을 제한하기 위해 법을 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법을 통해 부당하게 통제하려는 것은 오히려 인간들이죠. 다음의 묘사와 같죠.
법의 이름으로 괴롭힐 궁리를 하는 부패한 권좌가 당신과 동맹할 수 있겠습니까?(시 94:20)
모든 사람들은 오늘도 자유의 시간들을 갖습니다. 물론 실상은 직장에 나가야 하고 사업에 메여야 하는 시간들도 많겠죠. 요구되거나 정해진 행동들을 해야 하고요. 한편 도득질을 하거나 사기를 칠 수 있고 거짓말을 할 수 있고 욕도 할 수 있죠. 방화나 실인도 할 수 있죠. 그러나 그런 선택을 하고 나서 창조주에게 책임이 있다고 할 것입니까? 성서뿐 아니라 세상에서도 그런 것을 제어하는 기준을 두고 있지 않습니까? 인간들도 법적인 물리력 혹은 공권력을 통해 제지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결론은 이러합니다. 심지어 100%의 인간들이 폭력을 즐긴다 해도 그것은 악이며 멸망받아야 할 죄라는 것입니다.
거짓말하는 자들을 멸하실 것입니다. 여호와는 폭력을 일삼고 속이는 자들을 가증히 여기십니다. 여호와는 의로운 자도 악한 자도 살피시는 분, 그분의 영혼은 폭력을 사랑하는 자는 누구든 정녕 미워하신다(시편)
올바른 사람이라면 모든 폭력물로부터 자신을 지켜야 합니다. 스포츠나 게임, 영상물, 예술 등으로 포장된 모든 것들로부터요, 그런 사람들은 폭력이 아니라 정당하고 공의로운 물리력을 통해 제거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