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사상학

과연 씨인가

by 법칙전달자

과연 씨인가


단지 물리적으로 우발적으로 관계를 갖고 임신이 되어 낙태가 되거나 출생 후에도 유기되거나 죽게 되는 경우도 많죠. 성장하면서도 소모품처럼 취급되어 이른 시기에 삶을 마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 보아도 어떤 이유에서 두 명의 병사를 참했다는 기록이 있죠. 전시에는 독전대가 있어 도망가는 아군을 사살하죠. 625 때도 독전대에 사살된 군인들도 꽤 된다고 하죠. 새로 만든 무기를 주권자에게 소개하는 와중에 시험과정에서 보초병들을 죽였는데 눈 하나 깜짝 않고 무기의 성능에 감탄하는 장면을 연출하는 영상도 있죠. 손자인 경우도 자신의 군사훈련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 왕의 총애를 받는 애첩 둘을 참수했다고 하죠. 주권자의 과자를 먹었다고 해서 권위를 세운다고 수십 명의 수하무사들에게 할복을 명하는 경우도 있는데 할복은 고통스러우므로 칼이 배를 찌르기 전에 검수관이 목을 잘라준다고 하죠. 한 사람의 유능한 무사는 이런 상황에 항의하기 위해 그렇게 목이 잘리는 것을 피하고 할복의 고통을 겪으며 죽었다고 하죠. 까뮈의 이방인에서는 단지 태양을 가렸다는 이유로 살인을 하죠.


과거의 많은 스토리는 소위 의식 수준이 높다는 사람들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죠. 왕, 장군, 책사들의 이야기죠. 유비, 제갈량, 관우 같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꾸며지요.


관우가 바둑을 두면서 전황을 부하장수에게 묻죠. 적군과 아군의 전사자가 각각 5,000 정도라고 보고하죠.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일 뿐이죠.


푸틴의 정황은 매스컴에 종종 보도되죠. 두 나라의 수십만의 전사자는 거의 알려지지 않죠. 전사한 장군 정도나 그 이름이 언급되는 정도이죠.


브런치에 글을 올리거나 글을 읽는 정도이면 의식 수준이 높은 편에 속한다고 할 수 있겠죠.


무수한 사람들이 부조리하게 죽어왔죠. 생명은 존귀하고 소중하다는 종교적 철학적 이론들은 많죠. 그런데 어떤 현실에 직면하면 인간 생명은 결코 소중하게 취급되지 않습니다. 죽는 것은 대수롭지 않은 일상사죠. 짐승의 죽음과 별반 다를 바 없죠. 진화론적 무신적 유물론적 시각이 옳은 것 같죠.


그런데도 인간 개개인의 생명은 창조주로부터 심어진 신성하고 고귀한 씨앗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인간사에 일어나는 현상은 그 지혜로운 사랑의 창조주가 인간사에 전혀 관심이 없다고 생각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창조주는 바로 성서를 통해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간섭 말라고 한 도덕적인 도전에 대해 그 도전이 정당하고 참될 수 있는지를 온전히 시도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죠. 모든 부조리해 보이는 현상은 바로 그것이 원인이죠.


이제 그 도전이 철저한 실패이며 거짓임이 너무나 너무나 철저하게 증명되었습니다. 이 악한 상황의 종지부를 찍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하느님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죠. 그리고 결국 인간의 지력으로 풀 수 없었던 그런 현상들에 대한 만족스러운 답도 얻게 될 것입니다. 과연 인간에게 주어진 생명이라는 그 씨, 지극히 존귀하다고 주장되기도 하는 그 인간 생명의 어이없고 부조리한 중단에 대해서도 말이죠.


창조주는 이런 현상을 근원적으로 종식시키기 위해 하늘의 독생자의 생명을 인간 처녀의 태에 심었습니다. 그 아들은 그 목적달성을 위한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자신의 그 짧고 어리석은 생각에 의존한, 죽이고 죽는 그런 세상의 대한 집착에서, 그 악한 집착에서 벗어나서 뒤도 돌아보지 말고 탈출해야 합니다. 인간이 정치를 잘한다고 호전될 수 있는 상황이 전혀 아니라는 인식을 반드시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창조주가 이 세상을 멸망시키지 않는다면 저라도 그렇게 하려 할 것입니다. 세상은 돌이킬 수 없는 멸망의 당위성에 처해 있으며 곧 그렇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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