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사상학

완전

by 법칙전달자

완전


인간이 스스로 올바른 생각을 가질 수 있습니까? 논리적으로 참이 되는 판단을 하는 데는 개념으로 올바른 추리를 해야 가능합니다. 그런데 개념이란 정의하기에 따라 그 자체가 진리인 것입니다. 주관적이고 자의적인 것은 개념이 될 수 없죠. '주관'이라는 표현에 내포되어 있듯이 인간의 생각, 형상들은 일단 관념이 됩니다. 형상(形象)은 용어적으로 사용될 때는 관념과 유의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형상은 일단 믿을 수 없는 것이 됩니다. 그것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설명이 되는데 생각신호라는 것이 제멋대로이고 이는 양자역학적인 설명과도 일치하며 성서에서도 그 점을 지지합니다. 예레미아 17장 9,10절입니다. 마음은 그 무엇보다도 더 믿을 수 없고 무모하다.*누가 그 속을 알 수 있겠는가? 나 여호와는 마음을 살피고 가장 깊은 생각을 조사하여 각 사람에게 그 길에 따라, 그 행위의 열매에 따라 갚아 준다. 생각이란 또한 맹목적. 우발적. 비연속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개념적으로 추리하는 것은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개념'이나 '추리'를 올바로 이해하는 것 또한 그렇습니다. 특히 오늘날 '탈진리'적인 성향의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더욱더 그렇습니다.

더구나 근래에 밝혀진 계몽적인 지식이 없었던 사람들은 자의적이고 주관적인 생각 즉 관념으로 추리를 하여 필연적으로 오류인 판단을 하였습니다. 나름대로는 그것이 이상적인 것이라고 생각을 하였을 텐데 그것은 철학계나 종교계, 과학계 모두에서 그러하였습니다.


'완전'과 관련하여 나름대로의 관념적인 정의도 그러합니다. '전지', '전능'이라는 용어나 '신'에 대해서도 그러하고요, 그런데 과학계에서도 뉴턴이나 아인슈타인의 이론도 고전적인 것이라고 하는 것이죠. 이인슈타인도 신은 주사위를 던지듯이 만물을 운영하지 않는다는 표현으로 그 고전적인 생각을 밝혔죠. 그런데 창조주는 인간이 나름의 단순하고 이상적인 관념으로 쉽게 알아낼 수 있게 만물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인간이 고전적으로 생각하는 그런 물리적인 구조나 성질을 가진 것으로는 만물이 지금처럼 형성될 수 없으며 특히 생물이나 인간의 의식 같은 것이 존재하기가 불가능한 것이죠.


중략하고 '완전'이라고 번역한 원어의 어원적인 의미는 '분량이 채워지거나 목표에 도달하는 것' 정도의 의미를 가진 것이라고 합니다. 어떤 나라의 언어에는 완전에 해당하는 어휘가 없어 그와 비슷한 뜻을 나타내는 데는 '복숭아처럼 잘 익은'이라고 해야 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전능'으로 번역한 '사다이'도 문맥상의 의미는 '대적을 철저히 멸망시키는' 혹은 '자신의 백성을 온전히 보호하고 구츨하는'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하죠. 단지 사변적으로 '뭐든지 다할 수 있는'으로 나름대로 정의해 놓고 그런 관념으로 추리하여 부정적인 결론을 도출하는 것은 개념으로 추리해야 한다는 원칙에 벗아나는 것이죠.


창조주 자신도 슬퍼하기도 하고 후회하거나 화를 내기도 하는 분으로 묘사되기도 하고 엄하게 징벌하는 분으로 묘사됩니다. 부정적인 감정을 지니기도 하는 것이죠. 이는 인간이 일방적이고 주관적이고 사변적으로 생각하는 어떤 완전한 이상과는 거리가 먼 것일 수 있습니다.


절대적으로 완벽하고 완전한 사랑과 지혜를 가진 창조주가 만물을 창조한 것이라면 그와 결코 호응할 수 없는 부정적인 현상들은 무엇인가?라는 의심에 기인한 부정적 결론들은 전제가 되는 개념 자체가 주관에서 출발하였기 때문에 생기는 오류입니다. 성서의 기술들을 무시하고 철학적으로 생각한 것이 원인이죠. 일방적이고 근시안적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 성격의 생각이 옳다면 인간이 그렇게 쉽게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면 성서의 '인간이 알 수 없게 만물을 만들었다'는 원칙에도 위배되는 것이죠.


인간을 창조하고 나서 하느님은 '아주 좋았다'라고 했습니다. 하느님이 보기에 그러하였으니 그 창조가 완전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죠. 좋다는 것은 '기능이 정상적이고 작용이 순조롭다'는 의미이죠. 그런데 애초에 인간이 불순종하여 죽게 될 가능성이 있었던 것이죠. 그렇게 되지 않도록 소위 완전하게(?) 프로그램한 것이라면 인간에게 선택지를 주지도 않았을 것이고 선악과를 먹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 영생을 보장하는 생명나무도 필요 없었겠죠.


완전을 자의로 정의하지 않는다면 첫 인간이 불순종하여 죽게 된 결과를 창조가 완전하지 않은 것으로 해석하는 우를 범하지 않게 되는 것이죠.


결론에 이르면 만물의 온갖 부정적인 현상은 창조의 불완전함에 대한 증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무신론이나 진화론의 타당한 근거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죠.


생물계나 천체도 인간의 자의적인 관점으로 보면 온갖 부정적인 현상들이 있죠. 무시무시한 육식공룡들이 존재하였다가 멸종하였다는든지 돌연변이로 인한 기형적인 존재, 지구의 자기장이 약화된다든지 태양폭풍의 악역향, 초대형 운석의 지구와의 충돌 위협 등등


이런 모든 부정적으로 보이는 현상들로 부정적인 판단을 하려는 것은 기독교에서 철학적으로 고안해 낸 신이나 창조의 관념에 대한 것입니다. 성서에서 묘사된 창주주에 대해서는 아니지요. 그리고 성서에 사용된 문맥에 따른 자연스럽고 합리적인 어휘에 대한 개념으로 추리를 해야 하는데 이를 무시한 철학적 관념에 근거한 산학체계로 사상의 틀을 잡아서 생기는 오류에 빠지게 된 것이죠. 현상에 대해 매우 억지스러운 설명을 해야 하였고 이는 설득력이 없죠.


이는 인간이 스스로를 창조주보다 더 높인 결과입니다. 성서의 기록 자체를 무시하고 자신의 철학적인 생각을 더 옳다고 여긴 결과이죠. 기독교의 교리는 '교부철학', '스콜라 철학'처럼 아예 그것이 철학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공식적으로 명시되어 있습니다. 진리에 이르려면 말씀에 대한 온전한 존중심, 말씀 자체를 최종적인 결론으로, 창조주 자신이 그 생각을 인간에게 직접 밝힌 것이라는 확신하에 사고해야 하죠.


인간은 형상 즉 생각에는 신뢰를 갖지 못하지만 현상은 신뢰하죠. 이는 감각법칙에 따른 것이기도 합니다. 보는 것이 믿는 것이라는 말도 있고 과학의 두 중추적인 기초 중에 하나는 관측이죠. 다른 하나는 논리입니다. 그런데 예수 당시에도 사람들이 보아야 믿겠다고 하였는데 예수는 많은 기적들을 공개적으로 행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마음상태의 완악함 때문에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신들렸다고 하면서 모독하였죠.

형상은 믿을 수 없고 현상은 믿을 수 있는 이유는 뇌의 현상신호는 정확히 작용하지만 형상신호는 전혀 그렇지 않은 것이 원인이라고 합니다. 태양은 모양이 네모나 세모가 아니라 원형이라는 것에는 누구든지 절대적인 확신을 하는 것이죠.


양자역학적인 요동현상은 형상계에도 적용이 되어 인간에 머릿속에는 언제 어떤 생각이 떠오를지 알 수 없고 그것은 미리 프로그램되어 있거나 예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랜덤프로그램에 따른 것이죠.


인간의 뇌에서 일어나는 현상과 형상이 각각 그런 특징을 지닌 것이 맞다면 이는 창조주가 그렇게 만든 것이고 그런 것은 또 그렇게 작용하여야 완전한 것이죠.


인간은 창조주의 형상으로 만들어져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신적인 존재인 것처럼 생각이 들 때가 있을 것입니다. 마치 자신이 우주의 창조주인 것처럼 모든 것을 판단하고 규정하려 하죠. 신이란 없고 만물은 무에서 생겨나 진화된 것이라 생각할 수 있고 저처럼 전적으로 자의로 창조를 옹호하고 창조주의 특성을 증거 하려는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죠.


이러한 인간의 자유는 절대적으로 완전히 보장받고 그 선택에 따른 인과법칙의 적용도 그러합니다. 그 짧은 생각으로 도달한 결론을 마치 절대적이고 완전한 진리이기나 되는 것처럼 모순된 주장을 하고 그 주장과 일치하게 지금처럼 악하게 사는 사람들은 반드시 영원히 소멸하게 되며 스스로도 그렇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철학에 따라서요. 스스로의 생각을 적어도 무의식적으로는 절대적이고 완전하다고 여기는 것이죠. 그렇지 않다면 그것이 마치 진리라는 식의 태도로 그렇게 강하게 주장하지 않죠. 그들은 부정적인 성격의 주장들을 그것이 진리라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태도로 주장하는 명백한 자기 파괴적인 태도를 의식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꼭 뇌가 비어있는 좀비를 연상케 하는 정도이죠.


그러나 그들은 멸망에 이르게 전에 반복적인 경고를 받기 때문에 멸망이 집행될 때 변명의 여지는 없습니다. 그들은 자유의지로 끝까지 고집스럽게 법칙을 거스려 사용하여 스스로 파멸적으로 행동해 왔죠. 지금까지의 인류의 역사가 이를 증명합니다.


어떤 부정적인 현상도 창조의 완전, 법칙적용의 완전함을 깨트릴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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