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한 왕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다"는 말이 있지만 왕은 만인지상이라고 하죠. 법칙을 거스르는 존재이긴 한데 현실에서는 선망의 대상이고 각종 스토리가 왕을 중심으로 꾸며지죠. 왕권은 당연하고 정당하고 또 미화되죠. 심지어 '왕권신수설'이 있고 '천자'라고도 하는 것입니다. 부조리하기 짝이 없는 것인데 인간들은 이를 선호하여 이스라엘 시대에도 마지막 사사(판관)인 사무엘이 그 폐단을 아무리 강조했어도 백성들의 강요에 못 이겨 결국 왕을 선출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최전성기가 다욋, 솔로몬 시대였는데 다윗도 왕은 무엇이든 해도 된다는 잘못된 전제의식에 빠져서인지 죄의식 없이 간음과 살인교사를 행한 것으로 되어 있죠. 솔로몬도 압제를 비롯 여러 죄과에 빠져 결국은 반역이 일어나 나라가 나뉘었죠.
드라마 대장금에서도 중종은 매우 이상적인 성품을 가진 군주로 묘사되고 왕권의 행사가 긍정적으로 묘사되죠. 왕만 아니라 욍후, 대비, 후궁들의 권한도 모두 당연한 것으로 떠 받들어지죠. 수천의 궁인들은 그들을 섬기는 존재이죠. 왕족들에게 인정받는 것은 인생 최대의 성공으로 간주되죠. 왕은 최상의 음식을 매번 대접받죠. 원하는 여인을 임의로 취해도 그것은 성은을 베푸는 것이 되죠. 죽여도 그것은 왕의 당연한 위엄의 표현이죠. 사형에 해당되는 죄도 왕의 가족이 저지른 경우 유야뮤야 넘어가는 경우도 많죠.
전쟁에 나갈 때도 왕은 여러 애첩들을 데리고 나가 전쟁 와중에서도 막사에서 그들과 즐거운 시간을 갖는데 주변에서는 왕이니까 당연하다고 여기죠.
그러니 왕을 하고 싶어 하죠. 실패하여 죽을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왕권경쟁에서 혈육을 죽이는 경우가 허다하죠.
타인에 대한 부당한 권한을 배타적으로 갖는다는 면에 있어서 왕권은 법칙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한편 왕이 신과 같은 존재로서 과다하게 존중받는 것이 아니라면 -사실 대부분의 왕에 대한 공경을 나타내는 경우 왕이 가진 훌륭한 성품이나 자질로 인해 마음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것이라기보다 그의 권력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죠.- 인간은 누구나 그런 식으로 존중받아야 마땅한 것입니다.
사실 계층구조자체가 인간 사회에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죠. 어떤 면에서는 왕은 불쌍한 존재이긴 합니다. 순수하게 진정으로 그를 사랑하는, 그와 평등한 입장에서의 동료가 있기가 불가능하니까요. 본연의 인간관계를 한 번도 누려보는 경험을 히지 못하죠. 물론 그런 경험을 하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거의 전부이죠. 그 계층구조에 속한 모두요. 위에 오르려는 의식을 가진 사람 모두요. 그것은 정상적인 의식이 아니며 사람들 사이의 본연의 관계에서의 참 행복을 맛보는 것을 불가능하게 하죠. 불쌍한 것이죠.
왕 혹은 계층구조의 상위에 있는 사람들이 그 하위에 있는 사람에게 받는 형식적인 존경이 진정한 존졍이라면 인간은 누구나 그런 존경을 받아야 하죠. 그런 면에서 누구나 왕같이 될 필요가 있죠. 원래 인간은 인간이 생각하는 왕보다는 고귀한 존재입니다.
서로를 왕같이 섬겨야죠. 하늘 왕국은 그 성원이 144,001으로 되어 있는데 모두가 왕입니다. 최소한 왕인 것이죠. 그리고 그 왕권은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이어서 모두가 나누어도 누구나 부족하지 않습니다. 누군가 음악감상을 하고 있는데 다른 사람이 그것을 함께 듣는다고 해서 자신이 들을 수 있는 양이 줄어들거나 질이 떨어지는 것이 아닌 것이나 마찬가지이죠.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듣는 것을 말면 즐거움이 더 커질 수 있죠.
지상의 신민들은 그들의 통치를 받기보다 봉사를 받는 것이며 사실상의 주인공입니다. 그리고 각자는 자신에 대해서 왕 즉 통치자이죠. 외부의 봉사를 받는 기간은 천년이지만 그 천년기가 지나면 각자가 온전해져 왕같이 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간 역사상의 어떤 왕보다 인품이 훌륭하며 재능이 뛰어나죠. 주변의 모든 사람들로부터 인류역사상의 어떤 왕보다 더 진정하고 가치 있는 그런 사랑과 존중을 받게 되죠. 그리고 서로가 기꺼이 사랑으로 서로를 왕처럼 섬기게 되죠.
돌이켜 지금 시대의 왕을 생각한다면 아무도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면서 그 비천한 자리에 앉지 않으려고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