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제도
인간이 노예화된 이유는 자연의 법칙 즉 창조의 법, 영적 법칙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 법칙은 인간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았으며 구속력이 있으며 결코 변하지 않는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법칙을 이해한다는 것은 진정한 양심을 갖는다는 것을 믜미합니다. 도덕적으로 올바른 행동과 그릇된 행동의 개관적 차이를 확실하게 아는 것을 의미하죠. 그리고 올바른 행동만 하는 것을 의미하죠. 자연법칙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간다는 것은 도덕적으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죠. 그렇게 하여 진정한 자유에 이를 수 있지만 그에 반하여 살아간다면 노예상태에 빠지게 되죠. 이를 자유의 법칙이라 할 수도 있습니다.
본질적으로 인류를 두 개의 집단으로 분리하는 유일한 요인은 바로 권위에 대한 신봉 즉 노예제도가 정당하다고 믿는지의 여부라고 합니다. 다른 분리의 요인들 인류를 인종, 이념, 계급, 성별, 종교 등등으로 인위적으로 갈라놓으려는 것은 분할 정복 전략으로 인한 허상인 것이죠. 그러나 권위에 대한 신봉은 실제이고 이를 기준으로 인류를 두 개의 집단으로 나눌 수 있죠. 특정계층에 권위가 주어져 있다고 믿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기준에 따라서요.
국가라는 것은 폭력을 근간으로 권위를 행사하는 집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삶의 근간이 되는 것을 정하고 그에 따르도록 요구하죠. 일방적으로 정한 세금을 내야 하고 각종 정책에 따라야 하죠. 조세나 국방 등의 여러 의무를 법으로 정해 부과하죠. 이에 따르지 않고 끝까지 저항하면 국민을 납치, 괴롭힘, 절도, 살인 등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국민을 납치하고 감옥에 가두고 괴롭히고 도득질하고 실인할 수 있는 권한이라는 것에 의해 제재를 받게 되죠.
그러므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려움을 근간으로 이러한 권위를 인정하면서 그에 따라 사실상 노예로서 살아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서에서는 완전히 그 반대의 관점으로 접근하죠. 성서에는 그리스도인 조직에 속한 모든 사람들을 종으로 언급합니다. 여종, 남종, 집안일꾼, 사환, 하인 등으로 언급하며 사도들 스스로도 주의 종이라고 하죠. 자유로 스스로 종의 입장이 된 것이죠. 사랑으로 서로를 섬기는 종이죠. 타인을 부리는 권한을 가진 사람은 없죠.
사람에게는 두려움을 근간으로 하는 노예제도하에서의 삶을 선택할 것이냐 사랑을 근간으로 하는 섬기는 자로서의 삶을 살 것이냐 하는 두 가지의 선택이 있는 것이죠. 어차피 인간은 전적인 피조물이고 법칙에 따라 모든 기능이 주어졌습니다. 진정한 자유와 행복은 기꺼이 사랑으로 충만한 가슴으로 섬기는 삶을 사는데서 오는 것입니다.
타인에 대해 세금을 얼마 내라 총 들고 싸우러 가라 등등의 노예주로서의 지시를 할 권한이 소수에게 있다는 그런 법칙거스름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그것을 따르지 않으면 괴롭힘 당할 두려움에 의한 노예로 사느냐 법칙을 알고 사랑으로 그에 순응하는 삶을 사느냐 하는 선택을 할 수 있을 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