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지법칙과 지식의 종류
인간은 쌀을 만들 수는 없습니다. 쌀이 뭔지 알고 광합성이 뭔지 알아도 광합성을 일으키는 공장을 만들 수는 없습니다. 만약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식량문제는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되는데 광합성의 재료인 물과 이산화탄소 그리고 빛은 사방에 널려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쌀을 만들 수는 없지만 쌀을 어디에 얼마나 심을지 쌀로 밥을 지을 것인지 떡을 만들 것인지 막걸리를 만들 것인지는 전적으로 자유롭게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할 수 없는 일과 인간이 전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일의 경계는 분명한데 이는 우주가 운영되는 섭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생각의 영역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이 알기가 불가능한 것과 인간이 진리를 알아내도록 애초에 설계된 것과의 경계는 분명하지요.
인간이 알기가 불가능한 것에 대해 알아내려고 에너지를 쏟는 것은 좌절을 불러일으킬 뿐입니다. 고통과 불행이 따를 뿐이죠.
이 경계선을 분명하게 파악한 사람은 칸트입니다. 칸트는 인간의 인식기능을 감성, 오성, 이성으로 구분하였고 이성의 기능의 한계를 법칙처럼 규명하였습니다.
인식기능이 세 가지가 있다면 지식도 세 가지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감성적 지식, 오성적 지식, 이성적 지식이죠.
감성적 지식이란 태양은 불고 둥글다, 사과는 푸르다가 붉게 된다, 물건을 놓으면 아래로 떨어진다와 같은 것으로서 즉각적으로 정확한 지식을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많습니다.
오성적 지식이란 만유안력의 법칙, 피타고라스의 정리, 상대성 원리와 같이 학문계에서 밝혀진 지식입니다. 그러한 지식들은 대체로 오랜 연구 끝에 어렵게 얻어진 것으로서 지식의 발견자들은 큰 존경을 받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종교 혹은 철학계에서 추구해 왔던 것들 예를 들면 신이 존재하는가? 인생의 궁극의 목적은 무엇인가? 선악의 절대적인 기준은 무엇인가 등이죠. 이런 점들에 대해 사유하는 것이 이성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는데 칸트는 이런 점들에 대해서는 인간이 답을 알아낼 수 없음을 증명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이런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그런 점에 대해서 알려고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습니다.
이런 연유로 오늘날도 여전히 실존주의적인 삶이 지배적이 되어왔습니다. 본질은 알 수 없고 현재 살아있는 것 즉 실존은 확실하므로 정신적 에너지를 본질을 추구하는 데가 아니라 현재의 삶을 어떻게 하면 즐겁고 보람 있게 사느냐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 실존주의이죠.
본질에 관한 문제는 인간 스스로의 사유로는 알 수 없지만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창조의 근원에서 나오는 메시지를 통해서입니다. 의식을 열고 이를 진지하게 조사하면 필연적으로 그것이 진리라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 인간의 이성의 용도는 바로 창조의 근원에서 나오는 메시지를 조사하고 확인한 후에 그것을 적용하는 사고를 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불가지법칙을 제대로 알면 정신적 에너지를 불필요하게 낭비하지 않고 겸허한 가운데 진리를 알게 되는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