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심이 아니다

by 법칙전달자

변심이 아니다


사람은 처음 경험하는 것에 대해 큰 인상이나 감동을 받게 되죠. 하나를 알았는데 다 알게 된 것처럼 느껴 주변에 자기만 아는 것처럼 자랑을 하거나 가르치려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부면에 대해 그는 겨우 1을 안 것인데 다른 사람들은 12를 알거나 57을 알거나 해도 티를 안 내고 있는 것이죠. 그렇지만 그의 그런 반응 그 하나에 대해 과시하려 한다든지 가르치려 하는 태도에 대해서도 흔쾌히 수용해 줍니다. 오히려 고맙다고 반응할 수 있죠. 경멸적으로 반응하지 않는 것이죠.


그도 더 많이 알게 되고 이미 알게 된 것에 대해 익숙해지면서 처음의 그 화들짝은 누그러질 수 있습니다. 발전한 것이죠.


외모를 최대한 꾸며 그에 끌려 결혼했다고 하죠. 사실 자신의 내면, 인격을 아름답고 풍성하고 매력적으로 가꾼 사람의 외모는 경우에 따라 단정하지만 소박하기 그지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검소하고 겸허한 것이 그 혹은 그녀의 특징인 것입니다. 육적인 사람은 전혀 못 알아 봅니다.


아무튼 서로 간에 껍데기를 치장을 해서 외모나 물질을 매개로 결혼을 하게 되었다면 금방 싫증이 나고 이내 관심이 시들해지고 곧 큰소리가 오가는 관계가 될 수 있죠. 그 부실한 속사람의 실상이 서로 드러나서이기도 하죠.


그렇지 않다 해도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에 따라 동일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도 반복적으로 경험하면 감도가 떨어지게 되어 있죠. 그것은 일종의 발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처음 알게 되는 것이나 경험하는 것은 큰 인상이나 감동을 받지만 반복적으로 접하게 되면 점점 감도가 줄어들게 되죠. 배고팠을 때 첫 숟가락의 음식의 맛과 배가 잔뜩 불렀을 때의 음식의 맛은 다르죠. 효용이 체감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법칙이라고 하는 것이죠.


똑같은 것에 대해 열의나 의욕이 줄어드는 것에 대해 관심이 줄어들었네, 애정이 식었네, 변심했네 하고 언짢아하거나 실망하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죠. "나는 아무개 씨가 한결같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네"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물론 인간은 한결같아야 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그런 측면과 혼동해서는 안되죠.


집에 와서 보게 되는 배우자는 늘 그리운 바로 그 사람이어야죠. 입은 항상 코 아래 있어야죠. 가슴을 만져 보고 싶어 손을 넣었는데 그게 원래 자리에 없고 그래서 두루 살펴보니 등에 붙어 있다. 이런 경우는 물론 없겠지만 그런 식의 변화는 결코 인간이 원하는 것도 아니고 바람직한 것도 아닙니다. 목소리도 그대로야 하죠. 집도 그 위치에 그대로 있어야죠. 이처럼 변화나 발전이라는 개념이 적용되지 않는 대상에 대해서는 원래 그런 상태로 영원히 사랑하게 되는 것이죠. 왜 당신의 코는 항상 그 위치야 하고 투덜거릴 성질의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내가 해주는 처음의 밥상에 흰 씰밥과 된장찌개, 김치, 멸치 볶음 딱 그렇게만 올려 있는데 엄청 맛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례를 하면서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런데 매번 전혀 변화 없이 같은 것만 계속 나온다면 어떠할 것입니까? 매번 똑같은 한 가지의 옷만 입고 있다면요. 그래도 아마 그 점에 대해 비평적 지적 없이 요리를 자신이 하려 한다든지 다른 옷을 입혀주려 하는 시도를 하는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변하는 것은 부당하고 정당한 것이 있죠. 성적인 면으로 배우자에게 집중하는 관심은 변하지 말아야죠. 그런 관심을 다른 대상에게 향하는 것은 다양성이나 변화에 대한 자연스러운 욕구에 의한 것이 결코 아닌 법을 거스르는 것이고 범죄적인 것이죠. 눈, 코, 귀, 입의 위치도 달라지 는 것이 아닌데 변화를 시도한다고 해서 코를 목뒤에 붙이는 수술을 한다면 이는 법칙위반으로 유익한 결과를 전혀 기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왜 눈은 두 개가 앞만 보도록 되어 있어? 하고 불평하면서 하나를 뒤통수로 옮기는 수술 같은 것도요.


인간은 숭배라는 것을 해야 하고 그 대상은 창조주가 유일하고 영원한 것입니다. 변화를 줄 수 없는 것입니다. 에로스는 배우자에 대해 영원한 것이어야 하고 인간의 목의 위치는 영원하 가슴과 얼굴 사이이죠. 변화나 발전이라는 개념이 적용되어야 할 성질의 것이 아니죠. 인간이 망하는 이유,. 끔찍스러울 정도로 비정상적인 상태에 처해 있다가 죽게 되는 이유가 이런 면에서 다른 것을 찾거나 변화를 추구하는 그런 무법한 행위를 하기 때문이죠.


그러나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되는 두 가지 면이 있습니다. 한 가지는 병적이고 비정상적인 어떤 것이 시정되는 변화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욕을 하는 습관이 있다면 욕을 문화라고 생각하는 옳지 않은 생각이 있다면 바꿔야죠. 폭식을 하거나 술 취하는 습관이 있는 경우도요.


인간 영혼에는 그런 병적이거나 비정상적인, 불미스럽고 바람직하지 않는 면들로 가득 차 있다고 봐야죠. 그런 것을 시정하고 개선하는 변화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이죠. -9를 -7, -2로 결국은 0으로 만들어야죠. 없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면은 어떤 기능을 갖고자 하였다면 그에 대해서 발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처음에는 피아노를 칠 수 있는 기능이 0이죠. 그러나 배우고 연습을 해가면서 발전해 가는 것이죠. 외국어를 배우는 것도 그렇고 지식을 섭취하는 것도 그렇고 가르치는 기술에 있어서도 그러하죠. 인간은 이런 면에서도 무한한 부면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0이지만 1,2,3,4 이렇게 양적으로 질적이고 쌓아가고 발전해가야 하는 면이 있는 것이죠. 특히 영적으로 성장해 가야 한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양성이라는 면에 있어서도 그 가짓수나 양을 늘려 가야죠. 어떻게 보면 매일 변신해야 하는 것입니다. 노래를 배우는 경우에도 부를 수 있는 곡수를 늘여 가야죠. 같은 노래라면 더 잘 부를 수 있게요. 작곡가라면 계속 다른 노래, 성격이 다르거나 더 질이 높은 노래들을 만들어 내야죠. 글을 쓰는 사람도 마찬가지이죠.


늘 같은 같은 것, 변화 발전이 없는 것, 제자리이거나 퇴보하거나 악화되는 것은 우려의 대상이죠.


그 점에 대한 염려를 니타 냈다고 해서 애정이 식어지거나 변심한 것이라고 잘못 생각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사람 사이에 충정에서 우러나와 조언이나 충고를 할 수 있죠. 심지어 강한 경고나 징계를 할 수도 있습니다.


몰래 도박을 하여 가산을 탕진 중인 배우자에게 반복적으로 경고를 하였는데 끊지 못한다면, 음란물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마약을 끊지 못한다면, 술에 취할 때마다 욕을 하고 폭력을 행하는 것을 중단하지 않는다면 이혼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결코 변심이 아닌 것이죠. 변심이라 해도 의로운 것입니다. 그가 회개하고 회복되어 돌아온다면 감동하여 마치 집 나간 탕자가 다시 돌아온 것처럼 환영을 해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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