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찰력과 이해의 눈
뉴턴은 그전까지의 수백억의 사람들이 보지 못한 중력을 보았죠. 아인슈타인은 공간의 휘어짐을 이해의 눈으로 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근 물리학자들은 양자요동을 본다고 할 수 있죠. 최근의 초끈 이론이나 m이론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끈이나 막(membrane)을 본 것일까요? 아니면 그것은 헛 것일까요? 모르죠.
창조주의 선언에 의해 궁극의 본질은 인간이 모르게 되어 있습니다.
자랑하는 사람은 이런 것을 자랑하여라. 곧 통찰력을 가진 것과 나를 아는 것을, 내가 충성스러운 사랑과 공의와 의를 땅에 나타내는 이인 여호와라는 것을 자랑하여라.(렘 9:24)
성서의 일반적 원칙은 자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고전 13:4)
그런데 두 가지는 자랑할 수 있다고 하는데 하나는 창조주를 아는 것이고 그에 앞서 통찰력이 언급되죠. 통찰력이 있어야 창조주의 보이지 않는 신성과 능력에 대해 불 수 있고 그래야 자연스러운 자랑이 나오는 것이죠. 자랑이란 구체적인 것을 전시하는 것이니까요.
통찰력이란 현상의 보이지 않는 원인을 보는 능력이죠. 뉴턴은 아래로 떨어지는 현상의 보이지 않는 원인인 중력을 본 것이죠. 물리적 통찰력이 작용한 것이죠. 통찰력은 소재에 따라 물리적, 심리적, 언어적, 영적 등등 여러 가지가 있고 성질에 따라 법칙, 관계, 성질, 원리 등등을 발견하는 통찰력이 있죠. 뉴톤은 물리에서 법칙을 발견한 것이죠.
성서에는 이해의 눈이나 영안, 통찰력이 없는 사람들이 많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멸망될 짐승 같은 사람들이 그러하다는 것이죠.
이는 여호와의 손이 이것을 이루었고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가 그것을 창조하였음을 사람들이 보아 알고 유의하며 동시에 통찰력을 갖게 하려는 것이다.” 그들은 알지도 못하였고 이해하지도 못하니, 그 눈이 물감으로 칠해져서 보지 못하고 그 마음도 그러하여 통찰력이 없기 때문이다(이사야 41;20)
그들 가운데서 이 세상 제도의 신이 믿지 않는 사람들의 정신을 눈멀게 하여(고후 4:4)
요즘은 제3의 눈이라는 말도 있는데 사람들에게 영적 통찰력이 없는 이유는 그들이 세상의 영에 굴복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창조된 때부터 그분의 보이지 않는 특성들 곧 그분의 영원한 능력과 신성을 분명히 볼 수 있습니다. 그분이 만드신 것을 통해 그 특성들을 깨달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변명할 수 없습니다.(롬 1:20)
이처럼 너무나 분명한 것을 눈을 감고 고의로 외면하여 보지 못하는 결과는 어떠할까요?
그들은 그런 일을 거듭 행하는 사람들이 죽어 마땅하다는 하느님의 의로운 법령(롬 1:32)
그들은 죽을 때까지 육적인 일들을 추구하면서 살게 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