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가 아니라 소식이다.

by 법칙전달자

교리가 아니라 소식이다.

종교를 정의하기에 따라 성서는 전혀 종교적인 책이 아닙니다. 종교라는 단어도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그것도 부정적인 면으로 몇 번 언급될 뿐입니다. 창조주에 대한 합당한 관계를 종교로 언급하거나 암시한 적이 전혀 없는 것이죠. 반면에 정부, 통치와 같은 단어는 140번이나 나옵니다. 성서는 오히려 정치적인 책인 것이죠.

성서의 주제도 왕국이죠. ‘하느님의 왕국에 의한 통치권의 회복’이라 할 수 있죠. 소위 ‘천국복음’ 즉 ‘하늘 왕국에 관한 좋은 소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서는 교리라기보다 소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 십 년 전 하와이의 한 대학교수가 성서를 읽고 오늘 아침 조간신문보다 더 현실적이라고 한 말이 기억납니다.

도대체 어떤 소식입니까? 그리고 그것은 얼마나 신빙성이 있습니까? 사실 그 소식은 인과법칙에 따라 절대적으로 신빙성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봄에 밭에 씨를 심고 잘 관리하고 기후도 좋았다는 점을 근거로 가을에 풍부한 결실을 거둘 것임을 소식으로 전하는 것과 같습니다. 기아에 허덕이는 먼 지방에 있는 그의 친척에게 와서 우리 집에서 함께 살자는 권유와 함께 전하는 그런 소식과 같은 것이죠.

어떤 사람의 친구는 산에 올라가다가 독버섯을 먹어 중태에 빠졌는데 그의 가족에게 그의 사망에 대해 준비하라는 것과 같은 좋지 않은 소식도 있습니다. 둘 다 인과법칙에 따른 신빙성 있는 소식이죠.

소식이란 좋은 것이건 나쁜 것이건 미래에 있을 일의 알림입니다. 그 소식을 전해 들었다면 대비해야겠죠. 좋지 않은 일을 당하지 않게, 좋은 일이 자신에게 임하게 준비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원인에 따른 결과는 언제 발생합니까? 청산가리 같은 독약을 먹은 원인은 수분 이내에 그 결과 발생할 것입니다. 중금속이 함유된 식품을 장기적으로 먹은 원인에 대한 결과는 수 개월 혹은 수 년 후에 그 결과가 나타날 수 있겠죠.

결과가 임하는 시기는 원인의 성격에 따라 다를 것입니다. 그 정확한 시기는 원인의 성격과 그 작용에 관한 정확한 지식이 있는 경우에 가능할 것입니다. 어떤 방면의 권위자가 그러한 지식에 근거해서 언제 어떻게 될 것이라고 하면 일반 사람들은 그에 근거해서 대비를 하게 되죠. 어떤 지역에 언제쯤 화산이 폭발할 것이라고 하면 대피를 해야겠죠. 계획적으로 어떤 일을 실행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히로시마에 원자탄을 떨어트릴 때도 며칠 전에 그 지역에 미군 비행기가 삐라로 그 점을 알렸다고 합니다. 그걸 믿은 일부 사람들은 실제로 도피하여 생명과 건강을 보존할 수 있었지요. 물론 적군이 뿌린 삐라라서 믿지 않는 사람이 대부분이었겠지만요.

인간이 역사에 심은 원인 소위 업에 대한 결과는 언제 어떻게 임하는 것일까요? 그걸 인간이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소위 미래학자 등에 의해 여러 추정이 있을 뿐이죠. 창조주가 존재한다면 그분이 가장 정확하게 알 수 있겠죠. 바로 그 메시지가 성서입니다. 성서는 그런 이유에서 종교적 교리가 담긴 책이 아닌 것입니다. 인류의 미래에 대한 절대적으로 신빙성 있는 소식을 전하는 책이죠. 그 구체적인 내용과 그 원리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과거의 회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