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의 위안은 아니다
토끼들이 자신들의 처치를 비관하여 자살하러 가다가 자신들을 보고 도망가는 개구리들을 보고 위안을 얻어 자살을 포기했다는 우화가 있죠.
사람들이 서글픈 처지가 되었을 때 위안을 얻어 극단적인 선택을 피하는 방법이기도 하죠. 한국은 의료제도나 복지제도가 상대적으로 잘 발달되어 있습니다. 60대 중반쯤에 불치병 등 여러 안 좋은 상황이 중첩되어 우울하기 짝이 없는 상황에 짝이 없는 상황에 처해 있을 때......
그래도 교도소에 있는 사람이나 군대에 있는 사람들보다는 내가 훨씬 자유로운 입장이지. 우크라이나나 가자 지구에 있지 않아서 천만다행이지 그래도 옛 웬만한 황제들보다 내가 훨씬 장수하고 있지. 시각 장애인도 있고 휠체어 타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는데 나는 두 눈과 두 다리가 멀쩡하여 TV를 볼 수도 있고 걷기도 할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냐. 아프리카 같은 데는 굶어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던데.
자신에게 없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그나마 그것을 축복으로 생각하고 감사하면서 위안을 얻을 수는 있습니다. 또 그렇게 하도록 권함을 받기도 하죠.
그런데 궁여지책인 것이죠. 상황에 따른 최선책일 수도 있겠습니다.
인간이 예외 없이 처하게 되는 한계상황인 것입니다. 남 부러울 것 없는 좋은 상황에서도 자살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자살할 만한 상황에서도 악착같이 살려고 발버둥 치는 사람도 있고요.
상황은 인간이 생각하기 나름인 면이 있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상상력을 최대한 긍정적으로 발휘하여 그 효과를 최대한 활용하여 죽기 전까지 억지로라도 좋은 감정을 가지려 할 수는 있죠.
그러나 그건 아닌 것입니다. 다른 방법이 없으니 그렇게라도 몸부림쳐보는 수밖에요.
인간은 가난해서도 빚이 있어서도 아파서도 늙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누구에게 위협을 받거나 강금되어서도 안 되는 것이죠. 소위 못 생겨도 안 되는 것이죠. 너무 마르거나 뚱뚱해서도 안되고 욕을 하거나 욕을 들어도 안 되는 것이고 때리거나 맞아도 안 되는 것이죠. 피해를 끼치는 것도 피해를 받는 것도 안되고 죽이는 것도 죽는 것도 안 되는 것이죠.
이런 안 되는 것들은 모두 피할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얼마 살지 않아도 모두가 겪는 일이죠.
인간이 법을 어겨 생기는 일입니다. 인과법칙에 따른 것입니다.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이죠. 인간은 자신이 심지 않은 것 즉 남이 잘못한 것에 대한 결과를 자신이 거두게 될 수도 있어 아무리 잘 심어 보아야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부터라도 무엇을 어떻게 심느냐에 따라 자신과 남이 잘못 심은 결과를 상쇄해 나갈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라도요...... 창조의 법을 알고 그에 따라 새로이 심기만 한다면요. 안 되는 것들이 결코 영원히 생기지 않는 그런 삶을 살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