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쓸 때

by 법칙전달자

글을 쓸 때


작가가 소설이나 시나리오를 쓸 때 그 글을 읽고 독자들이 얼마나 재미있어하고 감동을 받고 기뻐하고 슬퍼하고 흥분하고 눈물을 흘릴 것인가 하는 점을 염두에 둔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문학작품이 아니더라도 독자들이 읽고 유익을 얻을 것이라는 전제하에 집필을 하죠.


그 작가의 글로 드라마를 만들면 히트를 친다는 그런 유명작가들도 있죠. 학자면서 기자인 어떤 유명인의 과학적, 학술적 저술물들은 여러 외국어로 번역되기도 하죠. 그런 사람들은 돈도 벌고 존경도 받죠. 나름의 권위도 생기는 것입니다.


이는 작곡가가 노래를 만들거나 가수가 노래를 부를 때도 그러합니다. 동료인간들을 얼마나 기쁘게 할 것인가 어떤 유익을 줄 것인가 하는 면에 본능적인 관심이 있죠. 이는 인간의 본연의 성향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동료인간의 행복과 유익을 위한다는 것이죠.


그런 글을 쓸 수 있는 사람들은 그것이 자신의 달란트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작가들은 심리학자이기도 한 것입니다. 인간의 의식의 어떤 특별한 측면에 대한 직관적인 지식이 있는 것이죠.


아우렐리우스 마르크스 같은 사람은 인간은 하찮은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할 필요 없다고 하였습니다. 일리 있는 말이죠. 자신이 영광을 얻기 위한 동기로 뭔가를 한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죠. 그러나 한편으로는 영광을 얻고자 하는 것도 일종의 본능입니다. 창조주도 그 하찮은 인간들에게 영광을 얻기를 원하죠. 그것은 인간을 소중히 본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고 인기연예인들이 그 팬들에게 그들을 매우 사랑한다고 피력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한편 예수는 자신이 영광을 얻겠다는 동기가 전혀 없이 사상을 전하는 활동을 했습니다. 그 언행을 집필한 제자들도 그렇게 하였죠. 그들의 필서가 오늘날 수천 개의 언어로 수십억 부가 발행되어 전무후무한 베스트셀러가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을 것입니다.


이 글을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은 성서의 집필자들인 경우에는 예외이고요 그들은 정상적인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었죠. 오늘날의 집필가와 창작인들에 대한 것입니다. 글을 쓰고 작곡을 하는 것과 관련된 의식에 지배되어 그렇게 하긴 하는데 그런 의식 자체가 창조주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은 의식하거나 반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물론 무신적 의식을 가져도 좋은 것들이 산출될 수 있습니다. 인간에게 주어진 것들은 선악 간에 구별을 하지 않죠. 훔친 음식을 먹어도 맛있게 느껴지는 것이고 부도덕한 성관계에서도 쾌락이 있는 것입니다. 태양은 의인인지 악인인지를 구별하지 않고 두루 비추죠.


창조의식이 없어도 모든 것을 할 수 있겠다는 착각은 사탄의 반역의 원인이 된 것이기도 하죠, 인간은 이에 동조하고 가담한 것이죠.


진정으로 영속적인 유익과 행복을 줄 수 있는 것은 이 창조의식이 반영된 창작활동과 학술적 활동이라는 것입니다. 연예활동도 그러하고요.


인기를 얻으려고, 자신이 영광을 얻으려고 혹은 돈이 되나 싶어서 하는 동기는 경우에 따라 이러한 의식이 배제된 것이라 진정한 것이 될 수 없습니다.


그 결과도 일시적으로 대단한 선풍적인 인기를 얻을지 모르지만 결국은 허망한 것이 됩니다. 그것을 그렇게 만드는 그러한 수준의 인간들에게 그런 평가를 받는 것 자체가 무가치한 것일 수 있는 것이죠. 이점에 있어 정확한 지식에 근거하여 올바른 분별력을 나타낼 필요가 있습니다. 인간이 아니라 창조주의 승인을 받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떤 영역에서든 그에 호응하는 인간의 머릿수는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오로지 그 절대적인 가치가 중요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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