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한
19세 때쯤의 일이었던 것으로 기억나는데 지인이 같이 가자고 해서 소위 룸쌀롱이라는 데를 가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접대부가 들어와서는 요청도 하지 않은 것 같은 데 상의를 들어 올리더니 유방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때의 그 역겨움, 충격은 아직까지 남아 있는 정도입니다. 그 뒤로는 한 번도 그런데 간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유흥소에서 그런 식으로 돈을 버는 여자들은 그게 손쉬운 돈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겠죠.
한 고전 중국영화에서는 한 아내가 집을 나갔는데 그 남자는 혼자가 되었는데 궁금한 것이 있었는지 홍등가를 가게 되었고 거기서 들어오는 여자는 다름 아닌 집 나간 아내였습니다. 그는 눈이 뒤집혀 흉기로 죽이려고 하였는데 다른 종업원들의 만류로 살인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한국에서는 성매매에 대한 법적 금지로 홍등가라는 것도 없어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바람직하지 않은 방법으로의 성욕의 만족은 대개 부도덕한 것으로 간주되죠. 행위뿐 아니라 그런 욕구나 생각 자체가 그러한 것이죠. 그렇지만 해소하지 않고서는 견디기 힘든 그런 상황이 있다는 것은 이해합니다. 생각을 발전시키고 호기심이나 욕구를 자극시키고 키워나간다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해소하려고 하는 강압을 이겨내기 힘들죠.
그래서 이성을 그런 시각으로 보게 되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본다든지 뭔가 섬씽을 만들어 보려고 모색하게 됩니다. 남녀 간에 결코 순수하지 못한 의식의 눈빛으로 그런 교감을 타진하는 경우들이 있는 것이죠. 그렇게 그릇된 경향이나 욕망에 지배된 사람들은 사람 자체가 더러운 것인데 전혀 그렇게 의식하지 못하죠.
어쨌든 기화다 싶어 그런 뜻을 이루려 시도했다가 성희롱, 성추행 혹은 성폭행으로 크게 불명예스럽게 되는 경우들이 있죠, 정치인이라면 단지 정계서 물러나는 정도 이상의 큰 치욕을 겪게 되죠. 그렇게 된다는 것은 양성적으로 혹은 공식적으로는 인간이 어떤 성의식을 가져야 하는 지를 알려주죠. 다행스러운 일면입니다.
성에 대한 호기심은 인간이 극복하기에 즉 자유를 얻기에 매우 힘든 그런 면이 있을 것입니다. 한국의 한 영화에서도 한 노승이 죽기 전에 젊은 여신도에게 옷을 벗어 알몸을 보여달라고 부탁을 하죠. 자신은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 여신도는 기꺼이 그렇게 하죠.
호기심이라는 것을 가질 것도 없이 닳고 닳은 사람들도 많이 있죠. 극단적으로 그 반대인 사람도 있습니다. 아예 그런 쪽으로 전혀 관심 없이 외면하면서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몸도 마음도 욕구도 호기심도 관심도 없으며 그냥 싫은 것입니다. 성의 세계가. 조금도 발 들여놓고 싶지 않은 것이죠. 혹 결혼했다 하더라도 완전 무관하게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성에 대해 비정상으로로 행한 경우는 성서에도 사례가 많습니다. 유대인이라고 할 때 그 유다는 야곱의 넷째 아들이고 그에게는 아들 셋이 있었는데 큰 아들이 죽어 며느리가 과부가 되었죠. 형이 자식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형수를 취해 아이를 갖게 해주어야 한다는 규정이 있었죠. 그래서 그의 동생 오난이 형수와 관계를 갖긴 하지만 설정을 형수의 질속에 하지 않고 땅에 해버리죠. 그래서 죽임을 당하죠. 그의 이름은 오난인데 자위행위를 뜻하는 오나니라는 말은 이에서 유래했다고 하는데 자위행위 때문이 아니라 아이를 갖지 못하게 한 그 행위가 악하다는 것이죠. 두 아들을 잃게 된 유다는 며느리에게 막내아들이 장성하면 남편으로 줄 테니 기다리라고 하죠. 그런데 그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죠. 유다도 아내를 일찍 잃었는데 아마 궁금한 게 있어 매춘부를 찾았습니다. 그의 며느리는 얼굴을 가린 치장을 하고 매춘부로 가장하여 시아바지와 관계를 갖고 아이를 낳게 되죠. 예수의 조상이 됩니다.
유다의 형은 그의 아버지의 첩과 관계를 가져 장자권을 잃게 되죠.
믿음의 본이 되는 다윗왕인 경우 밧세바의 목욕장면을 보고 걷잡을 수 없는 충동에 지배되었나 봅니다. 그의 남편을 죽이면서까지 그녀를 취하죠. 그의 한 아들도 이복누이를 겁간했다가 그의 친오빠에게 죽임을 당하죠. 솔로몬도 율법을 범하고 이방여인들을 취하여 하느님의 진노를 사게 되죠.
말하고자 하는 것은 성서에 나오는 유명인사들도 성적으로 비정상적이었는데 오늘날 사람들의 관련 행태들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례들이 어떻든 이성을 순수하게 동료인간이나 가족으로 보지 않고 성적으로 탐닉할 대상으로 의식하는 그 의식 자체가 불순하고 악하고 더럽고 혐오스러운 것이라는 것입니다.
유다도 며느리가 임신한 사실을 알고는 불에 태워 죽이라고 하였고 자기 친누이를 범한 사람들을 죽인 오빠들도 있는 것이죠. 아까 영화에서의 그 남자도 이율배반적으로 그의 아내를 죽이려고 했죠. 그의 아내가 다른 남자들에게 직업적으로 하고 있는 그런 행위를 다른 여자에게 받으려고 갔으면서 그러했던 것이죠.
혹시라도 자신이 아직 그런 잘못된 의식 상태로 성적 쾌락을 탐하려고 하고 있음을 발견하고 있다면 끔찍스럽게 여겨야 하는 것이죠. 음란물 자체를 혐오스럽게 여겨야 하는 것입니다.
성서에만 그렇게 하라고 하는 것이 아니지요. 세속 정부에서도 금하고 있는 것들이죠. 해롭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런 사람들은 인간으로서 살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더러워서 함께 할 수 없는 사람들이죠. 끔찍하게 여겨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너무 만연되어 있어서 이런 원칙에 공감할 사람들은 거의 없겠지만요.
하지만 진정한 성적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 것입니다. 더럽혀진 의식상태로는 무엇이든 참 행복을 누릴 수 없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