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책임
민간인을 죽이거나 민간시설을 파괴하지 말라는 것은 전쟁의 이론적인, 일반적인 수칙에 불과하죠. 실제는 전범자들이 이런 수칙을 이용하여 대부분 지인이나 같은 민족인 민간인들 사이에 있으면서 그들의 비호나 지원을 받으면서 작전을 수행하는 경우들이 있죠. 병원이나 학교 같은 민간시설을 그렇게 활용하는 경우도 있고요. 선제공격으로 피해를 받아 전범들을 말살하겠다는 작전을 세운 측에서는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민간적인 것들에 대해 온전한 배려를 보일 수 없게 되는 것이죠.
또한 우리는 100명밖에 안 죽였는데 너희는 왜 1,000명씩이나 죽이냐 너무 과한 것 아니야 하고 항변하는 것도 설득력이 없습니다.
나름 적대국에 대한 작전을 펼쳐 큰 피해를 입히고 자기 집단속으로 도망한 경우는 그를 추적하는 쪽에서는 그만 내놓으면 아무런 피해를 끼치지 않겠다고 제의하는 경우가 있죠. 그러나 그를 감싸고 있는 쪽에서는 "의리가 있지, 우리 모두가 죽더라도 그렇게는 못해" 하면서 결사 항전의 의지를 보이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이럴 경우 사회적 책임이라는 개념이 도입될 수 있죠.
관련된 원칙은 범죄자가 있다면 그를 동정적인 방식으로 대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 누구든지요. 성서에 그러한 원칙도 실례도 있죠.
그가 이제 그들에게 말하였다. “이스라엘의 하느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각 사람은 자기 칼을 옆에 차라. 진영의 문에서 문으로 오고 가면서 각자 자기 형제와 각자 자기 동료와 각자 자기의 절친한 친지를 죽여라.’”(출 32:27)
인간 사회에 범죄가 있어선 안되죠. 그가 누구이든 회개하지 않는 범죄자를 감싸서는 안 되는 것이죠.
그렇게 하는 사람은 그의 죄에 동참한 것이 되고 그와 동일한 형벌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인간은 범죄에 대한 단호한 배척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현재의 사회에서는 어디에서나 없어도 너무 없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도 범죄자이고 같은 정파에 속하거나 혈연, 지연 등등의 인연이 있는 사람인 경우 어떻게든 벌을 받지 않게 도와주는 것이 인지상정인 것처럼 행동하죠.
진정으로 도와주는 것은 그가 기꺼이 합당한 벌을 받게 하고 다시는 죄를 저지르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죄의 대가가 사형이면 그것을 받게 해야 하는 것이죠.
성서의 엄격한 원칙에 비추어보면 욕을 하는 것도, 정치를 하는 것도 사형죄에 해당합니다. 그걸 죄악시하지 않고 참여나 지지나 반대행위를 하는 것도 다 이에 해당하죠. 인간의 정치가 얼마나 큰 죄악인지는 변명할 여지없이 역력히 증명되어 있습니다.
인간도 나름대로 사회적 책임을 물어 사돈의 8족까지 멸족한다든지 민족 전체를 말살하려고 한다든지 특정 사상을 가진 사람들의 집단을 모두 제거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겨왔습니다.
인간들의 무기는 적대 사회자체를 멸절시킬 그 이상이 축적되어 있죠.
대부분의 인간들은 죽어 마땅한 범죄자들입니다. 인간사회가 군인, 민간인,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창조의 법에 의해 멸망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어떻게 무고한 노인이나 아이까지 죽이느냐 할 수 없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와 같이 그렇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는 것을 겸허하게 인정하고 악에서 떠난 사람들만 생존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원하는 사람은 그런 선택을 하는 경우 곧 멸망될 이 악한 세상에서 구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