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계몽적인

by 법칙전달자

더 이상 계몽적인


영적 도덕적으로는 더 이상 계몽적일 수 없는 수준의 원칙들이 있습니다. 지적으로는 그렇지 않죠. 얼마나 더 발전하는 것인지 그 한계도 알 수 없죠.


'영적'이란 '숭배와 관련된'이라는 의미가 있죠. 예전에는 예루 살램의 성전에서 여러 예물을 바치며 의식을 행하는 것을 숭배라고 생각했죠. 그러나 예수는 숭배하는 데 있어서 특정 장소나 건물, 제물, 예복 등등의 물질적인 보조물 같은 것이 필요 없으며 단지 '영과 진리'로 숭배하는 것이라고 했죠. 앞으로도 영원히 이보다 더 계몽적일 수는 없습니다. (요한 4:24)


인간이 지켜야 할 영적, 도적적 지침도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과 인간을 사랑하는 것이 요강이라고 하였죠. 그것만 준수하면 다른 잡다한 의식들이 요구되지 않았죠. (마태 22:36~39) 그것이 없는 상태에서 형식적으로 성문법의 문구에 규정된 것을 준수하는 것에는 별 가치를 두지 않았습니다.


욕을 하거나 폭행을 가하지 않아도 미움을 갖는 것 저체가 죄이며 성적 범행을 하지 않아도 음욕을 품는 것 자체가 죄이며 어떻게든 더 많은 재물을 가져 보려 여러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을 하지 않아도 탐심을 갖는 것 자체가 영적이지 않은 것이죠. 육적이고 물질적이고 부도덕한 것이죠. 모두 사랑이 없는 마음상태에서 나오는 것이죠.


반면 아무리 큰 선행을 하고 자기희생적인 행동을 해도 그것이 순수한 사랑에 기인하지 않은 것이라면 무가치한 것으로 간주되죠. (고전 13:1~3)


대접받기를 원하는 대로 대접하라는 원칙보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그리고 원수도 사랑하라든지 너희는 모두 형제이며 평등하다는 원칙보다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사회적으로 더 계몽적인 원칙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저는 몇몇 글에서 위정자들의, 원인에 대한 인식 전혀 없이 문제들을 결과적 영역에서만 해결하려고 하기 때문에 문제해결은 불가능하다는 취지의 글을 여러 번 올린 적이 있습니다.


또 '가슴으로 산다' '사랑의 속도로 산다'와 같은 취지의 글들도 올린 적이 있죠. 인간이 머릿속에서 뽑아낸 법적,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철학적, 종교적 논리는 그것이 아무리 그럴듯해 보여도 쓰레기와 같은 것이어서 결코 문제 해결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요. 그것들로는 범죄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도, 궁핍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도, 정의롭고 공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것도, 평화로운 사회를 만드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영원히...... 물론 질병이나 노쇠나 죽음이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도요.


인간문제의 해법은 위에 제시된 간명한 영적 도적적 원칙들, 더 이상 계몽적일 수 없는 완전한 원칙들에 순응하는 것뿐입니다.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인간의 머리는, 뇌는 원래 그런 문제들의 해법을 알아낼 수 없게 만들어졌습니다. 그런 해법들은 이미 창조주의 말씀을 통해 선언되어 있습니다. 그걸 무시하고는 머릿속에서 짜내고 짜낸 그 어떤 것들로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수천 년간 실패해 온 그런 식의 시도를 계속해보려는 그 어리석고 악한 인간들이 곧 맞이하게 되는 것은 죽어 없어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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